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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울진 기미독립만세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기미년 3.1운동이 확산될 무렵 울진 지역에서는 동년 4월 11일 매화장날 500명의 군중이 집결한 가운데 만세운동이 전개되었으며 4월 13일 북면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1,000여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1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이 탑을 건립하였다.
울산광역시 현충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96년
주제 : 기타
지역 : 울산광역시 남구
관할지청 : 울산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때 조국수호를 위하여 전선에서 장렬히 산화한 울산지역 출신 영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워커장군 추모비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여 1950년 9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우리나라를 지켜내는데 크게 기여한 워커장군은 1950년 12월23일 전방부대에 가던 중 의정부에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하였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에 만들어진 미군 휴양시설을 워커힐로 명명하였고 한미친선군민협의회에서 워커힐에 이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원주시 무공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0년
주제 : 기타
지역 : 강원도 원주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원주시 단구근린공원에 2013년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원주시 무공수훈자를 기리기 위해 ‘원주시 무공탑’을 건립하였다. 원주시와 무공수훈자회 원주지회는 무공수훈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공수훈자건립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탑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2013년 6월 17일 준공하였다. 6·25전쟁에서 원주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무공수훈자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원심창의사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경기도 평택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원심창 의사는 1906년 평택군 팽성읍 안정리에서 출생, 1918년 평택보통학교(평택성동국민학교 전신) 4년제를 졸업했다. 1923년부터 1932년까지 중국 상해등지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며, 1933년에는 육삼정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되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46년부터 1971년까지 재일거류민단을 결성, 단장을 역임하며 교포사회의 단결과 평화적인 남북통일 성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통일의 일념으로 활약하다 1971년 7월 4일 향년 66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치며 그 유해는 1976년 10월 2일 철원군 망향의 동산에 모셔졌다.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이 조선에서 무단 통치를 실시하여, 조선인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패전국의 식민지를 처리하자고 주창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도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게다가 1919년 1월 21일 사망한 고종이 일제 독살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민심이 동요하였다. 이에 국내 명망가들이 연합한 독립대표 33인은 독립 선언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애초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 선언 대회를 열기로 하였으나 충돌을 우려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파고다공원에서는 운집한 군중이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독립만세 운동은 1919년 3월과 4월에 걸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전주 등 인근 지역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의 흐름을 접한 원평 사람들도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특히 김제의 청년 배세동이 4월 13일 전주읍장에 갔다가 만세 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온 뒤 16일 같은 마을의 주민과 함께 의논하여 20일 원평장날을 기하여 만세 시위를 펼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군중이 모이는 곳을 감시하던 경찰에게 원평 시위대는 강제 해산되었고, 배세동 등 주동자 10여 명이 체포·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재판에 회부되어 6개월에서 1년간의 실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그리하여 1989년 10월에 청년 배세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제 주민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원태우지사 의거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2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05년 11월 22일에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지역을 유람 후 경부선 열차로 귀경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석수2동 안약육교 부근에서 이토히로부미를 향해 투석 수 주일간의 진료를 요하는 큰 상처를 입혀 안양인의 기개를 떨쳤을 뿐 아니라 국내외에 자주독립운동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지사는 거사 후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헌병사령부에서 2개월간의 모진고문을 당하는 옥고를 치루고 석방되었으나 지속적인 감시와 탄압으로 불우한 삶을 살다가 슬하에 자녀도 두지 못한채 1950년 6월 25일 59세를 일기로 의로운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애국애족의 뜻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다.
원태우지사 및 한흥리지사 조형물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2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원태우 자사는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 사냥을 왔다가 서울로 열차를 타고 서리재고개(현재의 안양육교)를 지날 때 혼자의 몸으로 돌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히고 곧 일경에게 체포 구금되었다. 이 의거는 민간항일운동의 효시가 된 거사로서 당시 대한매일신문 등의 언론에 수록되었다. 원의사는 1906년 1월 24일자로 모진 고문을 받고 석방되었으며 1950년 6월 25일 69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한항길 지사는 1919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생의 몸으로 3.1운동에 참가하여 만세를 외쳤고 이어 시흥·안양·군포 지역의 통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시는 한편 3월 5일 서울역에서 거행되었던 두번쨰 독립시위운동에 가담하셨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여년간의 옥고를 치뤘다. 이후 경성보인고등학교 교사, 경성매일신문, 부산국제신보사의 기자생활을 거쳐 광복과 함께 조국의 앞낧날은 기술진흥과 후진 양성에 있다는 신념으로 안양직물주식회사, 소사공업고등기술학교, 부천전문대학교 등을 설립하시고 공업 입국을 위한 기술인력 배양에 심혈을 기울이시다가 1979년 5월 8일 82세 일기로 타계하였다.
원주진위대터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895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강원도 원주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긍호(閔肯鎬, 미상~1908)는 한말 여흥민씨의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원주진위대 특무정교를 지냈다.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령이 공포되자 8월 5일 원주진위대의 장교와 병사들을 소집하여 무기를 나누어주고 창의의 깃발을 세웠다. 김덕제 등과 함께 1천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원주읍을 장악한 다음, 일본군 정찰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격퇴시켰다. 8월 8일 이후에는 제천·충주·죽산·장호원·여주·홍천 등지에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약 7개월간 여주읍 습격 점령전투를 비롯하여 72회 이상의 전투를 치러내며 일본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의병장으로 떠올랐다. 민긍호의병장이 거느린 의병부대는 단위부대로서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투력이 강으며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908년 2월 29일 궐덕리 마을을 포위한 일본군 충주수비대와 한국순사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으나, 의병 20여 명이 전사하고, 그는 사로잡혀 강림으로 호송되었다. 그날 밤 부하 60여 명이 강림을 습격해 탈환하려 하자 일제는 이를 두려워하여 29일 오후 11시경 민긍호를 사살하였다.
원곡면사무소(3.1운동만세시위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안성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년 3월 1일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해 만세 시위가 시작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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