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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영연방 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연방참전기념비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국연방 4개국의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1967년 9월 30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365-1에 건립되었다. 대리석을 4각으로 쌓아올린 비 중앙에는 4개국 국기가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 영연방군의 희생자 수와 참전비문이 새겨져 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에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영연방국은 1951년 4월 22일부터 4일 동안 가평군 북면 일대에서 중국군의 대공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중국군의 진격을 막아냄으로써 한국군과 유엔군의 퇴로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영해 3·1의거 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탑.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던 중인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영해읍 장날인 성내동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시위대에 참가한 3,000명의 영해면 주민들은 일본 경찰 주재소로 달려가서 주재소를 때려부수고 공립보통학교, 우편소, 면사무소들을 파괴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가 이튿날까지 계속되자, 오전 11시경 포항 헌병대와 대구의 보병 80연대 병력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향해 사격을 가하였다. 이 날 시위로 8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하였으며 196명이 재판에 회부되고 18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83년 11월 29일, 3·1운동의거탑건립추진위원회는 영해 장날에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애국선열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
영광정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10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광정(迎狂亭)은 이 지방출신 독립운동가인 김원중이 7인의 동지들과 뜻을 모아 1921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산6 건립한 것이다. 한일합병으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김원중은 애국동지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의병투쟁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모임을 가질 때, 마치 미친 사람행세를 하여 왜인들의 감시를 피했다고 하여 영광정(迎狂亭)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처마 끝에는 태극팔괘를 새겨 조국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이들의 굳센 의지를 담았다. 6·25전쟁 때 현판이 분실되었을 뿐 그대로 보존되어 오다, 일부 기둥과 현판을 보수하였다.
영산지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창녕군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남 창녕군 영산면 동리 호국공원 내에 영산지구 전투를 기념하고 전몰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교통부와 국제관광공사에서 1979년 4월 30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은 부산지역 공격을 위하여 영산지방에서 막바지 대공세를 펼쳤으나 미군과 아군의 결사방어로 남침이 저지된 격전지였다.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산화한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고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교통부 주관하에 국제관광공사가 집행을 맡고 국방부의 후원을 받아 이 전적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을 연하여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을 때 미 제24사단과 그 증원부대가 영산지역에서 북한군 제4사단의 공격을 격퇴한 방어전투다. 이 전투에서 미 제24사단은 북한군 제4사단이 낙동강 돌출부 지역에서 기습적으로 도하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영산지역으로 침입하자 이들의 밀양지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증원가능한 부대들을 통합, 공방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을 강서쪽으로 격퇴하고 방어진지를 회복하였다. 이 전투로 북한군 제4사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전선에서 물러서게 되었으며 그후 낙동강전선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천지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북 영천시 교촌동에 영천지구 전투를 기념하고 전몰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에서 1980년 10월 7일 이 비를 세웠다. 파죽지세로 남하한 북한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기도 아래 1950년 9월 4일 전략의 요충인 이곳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다. 만약 영천이 함락되면 유엔군은 울산-밀양을 잇는 이른바 데이비드손 방어선으로 철수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은 국가의 운명이 싸움의 승패에 달려 있음을 알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러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해 어찌할 바 없이 한때는 영천을 내놓기도 하였다. 분노한 군민들은 너도나도 총을 잡고 전장에 나섰다. 이윽고 전열이 정비되자 유재흥 군단장은 1950년 9월 9일 총반격전을 감행하여 금호강변에서 적을 포위 섬멸하고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의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고 북진의 기틀을 만들게 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국의 운명을 건 갈림길에 적구의 무리들이 영천벌을 넘나드니 인과 철이 용용하는 전쟁터로 너, 나 뛰쳐나가 둑을 막아 내 고장을 지켰다. 저~ 기룡산은 이~ 금호강은 너의 용자를 길이 간직하리.
영양 3·1의거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양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양 3·1독립운동 참가자들을 기리는 기념탑. 고종황제가 갑자기 붕어했다는 소식을 들려오자, 영양 출신의 오윤승·오석준 등은 고종이 시해당했다고 판단하고 고종의 인산일인 3월 3일에 망곡례를 올렸다. 3·1독립운동이 지방으로 전파되어 가던 중인 3월 17일에는 예안에서, 18일에는 안동 · 영해 · 영덕 등지에서 만세시위운동이 번져갔다. 3월 21일에는 영양 인근의 임동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석준과 오윤승, 유동수, 이원오 등은 영양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24일 저녁 7시쯤 오석준과 오윤승이 주민을 동원하니 삽시간에 400여 명의 주민들이 동원되자 청기면 면사무소 뜰안에서 만세 함성을 터져나왔다. 시위대는 가가호호를 돌면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25일 영양장날에 시위할 것을 기리면서 해산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167명이 일경에 검거되었다. 2002년 8월 15일 영양3·1의거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영양군 청기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영해 3·18만세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애국지사들을 기리는 기념탑. 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중에 이 영덕면 금호동 기독교 장로교회 조사인 강우근과 권태원은 영덕면 장날에 독립만세시위운동을 거행하기로 협의하고 영덕면 화개동,금호동,남정면 남정동의 기독교인 50여 명을 규합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2시 반, 영덕시장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장터에 모인 수백명의 장꾼들이 이에 호응하며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20여 명이 체포되었다. 2003년 12월 30일, 영덕 애향동지회에서는 영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
영양 무공수훈자 전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영양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양군 서부리 군민회관 입구에 2001년 이 고장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빛나는 무공을 세운 수훈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양군 무공수훈자전공비’를 건립하였다. 영양군 무공수훈자회는 이곳 출신 김옥명, 류기한, 박우중, 권찬석, 박태화, 백태봉 등 무공수훈자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공비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2001년 5월 7일 세웠다. 6·25전쟁에서 영양군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서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영혈사 충령각(양양)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952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양양군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발발로 육군 정보군 소속 첩보대대(4863대대)가 창설되었으며, 동해지역을 관할하는 36지구대에서 휴전 직후 가지 정보 및 무정 첩보대원으로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의 고급 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군의 고위 인사를 납치하는 등 목숨을 건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전사, 순직한 대원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이 사당을 건립하였다.
영동군 독립유공자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북도 영동군
관할지청 : 충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동군 독립유공자 기념탑은 영동지역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순국한 선열과 호국영령 등 59명 이름과 취지문을 새긴 탑이다. 영동군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얼을 기리고자 건립하였다. 영동군 독립유공자 기념탑은 자연스러운 원형 좌대에 양쪽 수직방향의 화강석 기둥이 음과 양이 서로 상승 변화, 화합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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