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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애국지사 정석대공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정석대는 1919년 4월 강원도 삼척보통학교에서 김달하·심부윤등과 독립만세시위에 참가, 활동하였다고 하며 1933년 6월 삼척군 삼척면에서 심부윤·오원모 등과 함께 삼척농민조합을 비밀 결사하여 면 담당 조직책임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34년 5월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35년 10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에 집행유예 4년을 언도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정석대공 추모비는 유족의 발원으로 삼척교육청 및 삼척보통학교 4.15만세운동기념사업회 등의 지원으로 건립되었다.
애국지사 고순진·고예진 선생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5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북 고창(高敞) 사람이다. 일찍이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외부주사(外部主事)가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동생 고예진(高禮鎭)에게 격문 2백여 매를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게 하였으며, 면암의진(勉菴義陣)에 조총(鳥銃)을 제공하고 군자금을 내기도 하였다. 1919년 3월에는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한국유림들의 파리장서(巴里長書) 서명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2,674자의 장문으로 된 청원서에 한국 유림대표 137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하였다. 이 파리장서는 김창숙(金昌淑)이 상해에 전달하였고, 당시 파리에 한국대표로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였으며 국내의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고당 전배근선생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배근은 죽변면 봉평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해 그해 12월 청송 이하현과 흥부장터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1907년 일제의 군대 강제 해산발표에 반대해 의병 200명을 인솔, 평해를 점령하고 평해군수 이명근을 설득, 관군 40명과 군자금 1천냥을 받아 관군과 백성들을 위로하고 식량을 마련했다. 그해 10월 성익현·정경태·변학기 등 의병진과 합세해 삼척읍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면서 삼척 오십천 능촌에서 3일간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1908년 7월 울진 서면전투에서 수적 열세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후 애국동지들과 연대, 광복정신을 함양한 선생은 군자금을 모금, 상해임시정부에 밀송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국권회복의 좌절로 인한 심적 부담과 전투 중 입은 상처의 악화로 38년 6월23일 향년 61세로 순국했다. 그의 애국충절을 높이 기려 정부에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애국지사 고당 전배근 선생의 공적비는 2006년 10월 죽변면 봉평해안에 세웠다.
애국지사 이용태·이용준선생 형제 동상 및 추모비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90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대종교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용태·이용준 형제의 동상과 추모비. 이용태는 1938년 제천군 백운면장으로 근무하다가 동생 이용준이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어 압송되는 것을 목격하고 1939년 4월 만주로 망명해서 대종교총본사에 입교하였다. 대종교 참교와 지교를 역임한 후에 경의원장(經議院長)에 임명되었다. 1942년 12월 26일 임오교변 당시 대종교 간부 24명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며 목단강 액하감옥에 투옥되어 복역하던 중 해방을 맞이해 출옥하였다. 이용준은 1927년 신간회에서 활동했으며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였다. 1932년 중국 천진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며 고등밀정을 처단하는 일에 앞장섰다. 1937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8년 재중국일본공사 아카라 아라요시〔有吉明〕처단 기도가 탄로나 북경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당하였다. 1940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이용태·이용준 형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2006년 9월 18일 박달재 수련원에서는 이용태·이용준 형제의 독립행적을 추모하고 독립정신을 기리고자 동상과 추모비를 세웠다.
애국지사 구국충정 숭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강원도 고성군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근옥은 강원 양양 출신으로 3·1독립운동 때 양양군 토성면 윤봉리에서 만세시위를 고무하는 격문 '충고동포'를 지어 각 마을의 게시판에 붙이는 등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섰다. 같은 해 10월초 김형석의 권유에 의해 철원애국단에 가입하였으며, 가입 직후 김연수·문명섭·이석규 등을 단원으로 포섭하였다. 활동은 주로 임시정부의 선전활동과 재정자금의 조달, 그리고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같은 해 10월 하순에 그는 앞서의 동지 김연수·이석규·문명섭 등과 함께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에 직접 참여·활동할 목적으로 서울에 올라왔다가 강원도 고성 등지를 다니며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다. 그런데 1920년 1월 강원도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연수는 강원 양양 출신으로 1919년 10월에 이근옥의 권유에 의해 철원애국단에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하순에 그는 이근옥·이석규·문명섭 등과 함께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에 직접 참여·활동할 목적으로 서울에 올라왔다가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그는 양양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1월에 동단의 강원도단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피체되어 1년여 동안 고초를 치르고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문명섭은 강원 양양 출신으로 1919년 10월에 이근옥의 권유에 의해 철원애국단에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하순에 그는 이근옥·이석규·문명섭 등과 함께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에 직접 참여·활동할 목적으로 서울에 올라왔다가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1920년 1월 강원도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다가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애국지사 구국충정 숭모비는 길이 2.27m, 폭 0.8m로 2007년에 완공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신 마을출신 세분 이근옥, 김연수, 문명섭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애국지사 박준승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정읍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박준승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2019년7월2일 정읍시에서 건립하였다.
애국지사 함당 정진화선생 지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3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예천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정진화는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났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채 잠자고 있는 민족을 깨우치는 포고문을 작성, 배포하고, 부호에게는 군자금을 헌납하게 하여 수합하였다.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의 군자금 수합에 주력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장승원·박용하 등 친일부호 처단으로 그 조직이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애국지사 하우 김홍권선생 공훈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0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홍권은 1892년 지금의 양보면 운암리에서 태어나 하동보통학교에 입학해 1909년 안희제, 이원식 등과 대동청년당이라는 비밀결사단체를 만들어 국내외 지하공작활동을 했다. 특히 그는 항일 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의 하동군 대표로 참여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재무위원을 역임했으며, 의정원 의결에 따라 경상도 지방 구급의연금 모집위원으로 선임돼 경남지역 책임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또한 1920년부터 1936년까지 만주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천석지기 전 재산을 다 바쳤으나 조국의 독립은 보지 못한 채 1937년 향년 46세로 눈을 감았다. 김홍권의 공훈비는 지역민의 노력으로 2005년 8월15일 선생의 고향에 세워졌다.
애국지사 사당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0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경남 마산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학생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들 가운데 고앙주(高昻柱, 미상~1919), 김수동(金守東, 1877~1919), 김영환(金永煥, 미상~1919), 김호현(金浩鉉, 1893~1919), 변갑섭(卞甲燮, 미상~1919), 변상복(卞相福, 미상~1919), 이기봉(李基鳳, 미상~1919), 홍두익(洪斗益, 미상~1919) 등은 1919년 4월 3일 진전면·진북면·진동면의 연합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의 발포로 시위 현장에서 순국했다. 마산시에서는 이들을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2008년 12월 5일 이 제당을 세웠다.
애국지사 박정주선생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장수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라북도 장수(長水)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산서면 동화리(山西面桐花里) 장날을 이용하여, 안성섭(安成燮)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긴급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결국 이해 6월 13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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