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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이승복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68년년
주제 : 기타
지역 : 강원도 평창군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승복 기념관은 1968년 12월 9일 울진삼척지구로 침투한 무장간첩들에게 9살의 어린 소년이“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분연히 외치다 산화했었던, 그 소년 이승복군의 반공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 대관령에 이승복반공관으로 개관하여 1982년 10월 26일 이승복기념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 부지로 이전하였다. 본 기념관은 강원도 평창군 노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승복군의 가족묘와 동상, 생가 모형, 본관 전시실, 군용장비 야외전시장을 비롯하여 자연학습장, 민속자료관, 야생화단지 등 총 10개의 전시관 및 학습장으로 운영 되고 있다.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1953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수도 서울의 최후방어선인 미아리고개를 돌파하고 창경궁 앞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는 거의 1천여명에 달하는 부상 장병들이 응급실, 입원실, 수술실은 물론, 병원 복도까지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은 남소위가 지휘하는 국군 1개 경비소대 병력과 육군본부 병참장교 조용일 소령의 지원하에 있었다. 이후 전세가 악화되어 북한군의 서울 함락이 목전에 있었으나 병원 내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피난도 잊은 채 오직 환자 치료에만 전념하였다. 6.28일 새벽, 국군 경비소대가 병원 주위를 철통같이 방어하며 완강히 저항하자 북한 괴뢰군은 1개 대대병력을 투입하였고, 국군 경비소대는 이곳 뒷산에서 결사항전 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조용일 소령과 소대장 남소위가 전사하고 소대원 전원도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고 병원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하신 이름 모를 자유전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3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이하여 이 비를 건립하였다.
이충순 자결터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신이다. 1902년 7월에 육군보병 참위(參尉)로 임관되었다. 1905년에 군인구락부를 조직하고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고 이어서 비밀각서에 의하여 한국군마저 강제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8월 1일 시위대(侍衛隊)가 전격적으로 해산 당하자 이를 거부하고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여 미리 파견된 일군과 경성에서 접전하던 중 크게 부상을 당하였다. 적에게 사로잡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에서는 이충순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규필 애국지사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규필 애국지사는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국권회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이 이끄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광무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용기 의병장은 포수와 농민 등의 민병을 규합하여 경북 영천에서 산남의진을 결성하였는데 그는 군사 소모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각 지역을 연락하며 의진편성에 힘썼고 창의 당시에는 연습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적의 모략에 속아 정용기 의병장이 피체됨으로써 의진은 해산되고 말았다. 출옥한 정용기 의병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1907년 각지에서 활동하던 의사들을 모아 북동산(北東山)에서 산남의진을 재결성하였다. 이규필은 이때에도 의진에 참여하여 우영장(右營將)에 선임되었다. 이후 산남의진은 해산군인을 포섭하여 병력을 보강하고 군령을 정하여 장병들을 단속하는 등 군세를 확장하였 다. 그해 8월부터는 청하읍을 습격하였으며 청송 신성(薪城)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며 위맹을 떨쳤다. 또한 영천 자양면(紫陽面)에서는 일본군 3명을 효수하기도 하였다. 이규필은 산남의진의 우영장과 우포장(右砲將) 등을 역임하며 이와 같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해 10월 입암(立巖)전투에서는 중과부적으로 의병장 정용기를 비롯하여 손영각(孫永珏), 권규섭(權奎燮) 등의 장령들이 전사 순국하는 패전을 겪었다. 이후 이규필은 새로이 산남의진의 의병장이 된 이세기(李世紀)와 함께 대일항전을 계속하다가 국권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울화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소응선생 창의 숭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61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제천에서 창의한 이소응 의병장의 창의 숭모비. 이소응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서 1896년 1월 강원도 춘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개화파의 선봉인 강원도 관찰사를 처단하고 서울로 진격하다가 가평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였다. 이소응 의병진은 제천의 유인석 의병진과 합류하였다. 이소응은 제천 백운면 애련리로 이거하고 제천을 중심으로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유인석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교포들에게 충효·의열의 정신을 함양시켜 의병을 일으키고, 1909년 청풍면 장선리로 이주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피검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이후 국내에서 투쟁이 어려워지자 1911년 요동지역으로 들어가 순국할 순간까지 항쟁을 계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89년 1월 1일 대한노인회 제천시지회 백운면분회에서는 이소응 의병장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이봉희지사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68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경상북도 성주(星州) 사람이다.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한국 유림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으며, 4월 2일 성주읍 장날을 이용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근석장군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구시 동구 검사동 제11공군전투비행단 내에 6·25전쟁시 시흥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이근석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1953년 10월 2일 동상을 세웠다. 이근석 장군은 평남 평원군 청산면 구원리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끝없는 하늘에 대한 동경과 함께 비행사에 대한 꿈을 품어왔는데 1933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있는 구마다니 비행학교에 소년비행병 제2기생으로 입교했다. 천재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조종사로서의 재능은 그를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그의 조종술은 교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담당교관은 그를 비행술의 천재라 칭할 정도였다. 1934년 만주 사변에서 구마다니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요시오카 전투비행부대로 배속되었는데, 당시 요시오카 전투비행부대는 육군항공부대 중에서도 최정예의 조종사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첫 출격부터 적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린 그의 조종술은 부대의 정평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 공군 창설에 주력해 최용덕, 김정렬, 이영무, 장덕창, 박범집, 김영환 등과 함께 공군 창설 7인 간부의 일원으로 이 과정에 참여하여 마침내 1946년 4월 1일 최초의 항공부대가 조선경비대 내에 창설되었다. 1948년 수색의 조선경비대 보병학교를 거쳐 5월 14일 태능의 경비사관학교를 간부후보생 1기로 졸업, 육군 소위로 임명된 그는 육군항공 총감부와 육군항공기지사령부에서 비행단장으로 근무한 후 1949년 7월 육군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1949년 10월 육군으로부터 공군이 독립됨과 동시에 이근석은 새로이 창설된 공군사관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임명되어 공군의 간성을 육성하는데 이바지하였다. 1950년 5월 공군 비행단장에 임명되었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F-51전투기 인수단장의 자격으로 도일(渡日)하여 미 극동공군이 양도한 10대의 최신 전투기를 성공적으로 인수하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F-51기를 인수하여 귀국해 1950년 7월 3일 작전명령 제25호에 의거 대한민국 공군 사상 최초의 전투기 출격을 감행하였으며, 7월 4일에도 작전수행을 위해 출격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시흥지역에서 남하중인 적 탱크를 공격 중 적의 포탄이 장군의 비행기에 명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사후 1951년 9월 19일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공군 대령에서 공군 준장으로 특진이 추서되었다.
이천시 6·25 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이천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천시 관고동에 6·25전쟁에 이 고장 출신 참전유공자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이천시 6·25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천시는 한인수, 권오동, 이병우, 이영순, 이기남 등 참전유공자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6년 4월 25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 기간 이천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군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이석용의병장 생가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878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북도 임실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석용 의병장
이동녕선생 생가·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관할지청 : 충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동녕 선생은 독립협회 가입을 시작으로 언론, 교육 활동 및 청년회 조직 등을 통해 개화민권,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조국의 독립과 민권국가 건립에 전 생애를 바쳤으며, 북간도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을 설립, 귀국후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으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끄신 인물이다. 이러한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후세에 널리 전하고자 생가를 조성하고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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