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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지사 석당 변상태 선생 기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9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1916년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였으며 1919년 2월 하순 서울에 있는 동지들로부터 상경하라는 연락을 받고 동지인 김관제(金觀濟)·이시영(李始榮)과 함께 상경하여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그후 이들은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을 계획하고 각자 책임지역을 선정하였는데 그는 경남 서부지역을 담당하였다. 그리하여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귀향한 그는 이희석(李喜錫)·조태식(趙台植)·이경형(李景 ), 창원의 이수룡·권태용(權泰容)·권영조(權寧祚)·권영대(權寧大)·변상섭(卞相攝), 고성의 황태익(黃泰益) 등과 함께 힘을 모아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이들은 거사일을 3월 28일의 장날로 정하고 당일 곳곳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이어서 독립선언서와 선전격문을 살포하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일경의 탄압으로 해산되자 그는 몸을 피해 권영대·권태용 등과 재기를 도모하고 거사를 준비하였다.그는 4월 3일 회집 장소인 진전면 양촌리 천변(川邊)에 큰 태극기를 세우고 진전면(鎭田面)·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에서 모여든 수천 명이 넘는 군중앞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자유국(自由國)의 국민이다. 일본의 간여는 추호도 받아서는 안된다.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로 항일의식을 고취한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탄압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변상태는 피체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西大門)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출옥후 그는 1944년 8월 의열단(義烈團)의 구여순(具汝淳)·이주순(李周順)등과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지리산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남원 부운리에 6·25전쟁 기간에 공비토벌 과정에서 산화한 전몰군경 7,283위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리산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남원시는 이곳에서 전사한 호국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 탑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1955년 5월 15일 준공하였다. 6·25전쟁 기간 남원 시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남원시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리산지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48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여기 삼남의 지붕에 공산비적이 반거하게 된 것은 1950년 낙동강 선까지 남침했던 북괴군이 우리의 총 반격에 다시 쫓기어 가게되자, 그 일부가 지방공비와 합류하여 이곳에 숨어들게 됨으로부터이다. 당시 이들 적도의 세는 2만에 달하였는바 천험의 산세를 이용하여 도량하되, 그 지역이 동으로는 의령, 서로는 고창, 남으로는 보성, 북으로는 금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양민의 학살과 납치, 재물의 약탈과 방화 등 갖은 만행을 자행하니, 낮에는 태극기가, 밤에는 적기가 나부끼는 양상이 되었다. 이에, 그해 말부터 이곳 남원을 중심으로, 국군 6개 사단과 2개 독립연대, 그리고 6개 독립대대 및 전투경찰 4개 연대와 7개 독립대대, 그리고 11개 경찰서의 의용경찰과 대한청년단 특공대 등이 힘을 모아 이들을 함께 무찔러, 1952년을 고비로 그 세를 꺽고, 1954년에는 조직의 뿌리를 잘라 드디어 이를 초멸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그때 이 평정이 이루어지지 못횄더라면, 어찌 오늘 이곳 곡창에서 격양가가 메아리 칠 수 있었겠는가? 다시금 고개숙여 그날의 충혼을 기린다.
진주 호국무공수훈자 전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4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진주시 초전동 농산물도매시장 앞 남강 변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무공수훈자들을 기리기 위해 ‘진주시 호국무공수훈자 전공비’를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회 진주지회는 무공수훈자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공수훈자건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04년 4월 22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진주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무공수훈자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공산주의에 맞서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빛나는 전공을 세워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고, 경제발전을 초석을 다졌다. 서구청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진주 항일투사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진주시 매년 신년, 3.1절, 광복절에 후손들이 정기적인 참배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우리고장 출신의 애국선열에 대한 공훈을 돌이켜보고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보는 의미있는 산교육장으로 활용 동부지역(문산, 반성, 금산, 미천, 정촌, 금곡: 옛진양군)의 항일투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됨, 매년 신년, 3.1절, 광복절에 후손들이 정기적인 참배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우리고장 출신의 애국선열에 대한 공훈을 돌이켜보고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보는 의미있는 산교육장으로 활용
진병산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5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895년의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 시해와 단발령의 강제로 배일감정이 폭발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투쟁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20일(음력 을미년 12월 16일)에 유중락(柳重洛)·이만응(李晩應) 등의 지방유생과 1,000여 명의 농민들에 의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소응은 척사위정의 대의를 내세워 일본을 오랑캐 왜노(倭奴)로 규정하고, 엄한 군율 밑에서 부대를 통솔하였다. 먼저 정부에서 개화관료인 조인승(曺寅承)을 춘천관찰사 겸 선유사로 임명하자 단발하고 부임한 조인승를 참형에 처하여 그 기세를 올렸다. 2월 8일에는 이겸제(李謙濟)가 인솔한 친위대 3개 중대의 공격으로 타격을 입고 흩어졌으나 다시 모여 부대가 정비되었다. 그 뒤 포천·영평·양광 등지에서 맹위를 떨쳤다. 또 일부 병력은 그 뒤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강릉에 이르렀고 경기도 여주·이천에도 진출하였다. 그러나 신우균(申羽均)·김구현(金龜鉉)이 지휘하는 관군의 공세가 치열해지고 전략 전술 및 무기의 열세로 점차 전력이 약화되었다. 한편,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문제도 곤란해져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와 협상하였으나 실패하자 2월 17일 부득이 제천의 유인석(柳麟錫) 부대로 이적하였고 부대는 종형 이진응(李晉應)이 지휘하였다. 이진응 다음에는 이진응의 아우 이경응(李景應)이 대장에 추대되어 지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소응 [李昭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진해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진해 풍호동 풍호공원 내에 6·25전쟁 기간에 산화한 이 고장 출신 전몰용사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진해시는 이곳 출신 호국전몰용사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 탑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1995년 1월 1일 준공하였다. 6·25전쟁 기간 진해 시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진해시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진주시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진주 판문동에 ·25전쟁 기간에 산화한 이 고장 출신 전몰용사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진주시는 이곳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 탑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1958년 5월 30일 준공하였다. 6·25전쟁 기간 진주시 시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진주시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진도경찰부대상륙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 제 12대 진도경찰서장 김용래 경감 등 138명으로 편성된 경찰부대가 10월 5일 11시 30분경 진도읍 해창리 동소포 해안으로 상륙하여 진도경찰서로 진격, 인민국 30여명을 격퇴하고 같은 날 오후 2시 경 경찰서를 탈환한 후 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다시 게양하였으며, 당시 의신면 옥대리 돌창고에 감금되어 있던 경찰가족 등 우익인사 50여명을 구출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양하였다. 이게 진도를 수복한 감격스런 그날 을 기념하고 선배 경우님들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숭고한 정신을 길이 기리고자 이 비를 세움
진해 해외참전 기념탑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2007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자유민주주의수호와 세계평화를 위해, 베트남(월남), 동티모르 등 12개국의 해외 전쟁에 파병한, 해외 참전의 참뜻을 국민에게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빛난 얼을 영원히 기리며, 자라나는 후세와 국민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 자유민주주의 체재 수호 및 시국안정과 우국충정의 호국이념을 고취시키고, 참전용사들의 명예와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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