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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초산 김상윤 선생 의열투쟁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20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의열단 창단시 김원봉, 황상규 선생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1920년 밀양폭탄투척사건과 부산경찰서장저격사건, 다나까대장 저격사건, 동경황궁습격사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김상윤 선생을 추모
최영희 장군 흉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제16대 국방부장관, 제5대 합참의장, 제16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시고 6.25전쟁의 영웅이신 덕장 故최영희 장군의 흉상을 건립하여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조국에 헌신하신 고인의 고귀한 희생과 공적을 대내외에 알리고 기려 우리의 6.25전쟁의 아픔과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널리 알리고 전하려는 교육홍보의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함.
최규식경무관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68년
주제 : 기타
지역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1·21사태 당시 무장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을 추모하기 위해 내무부에서 1969년 10월 21일 이 동상을 건립했다. 최규식 경무관은 대한민국의 경찰관으로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 공비들에 의한 1·21 사태 때 사망했다.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61년 경찰에 투신해 1967년 10월부터 서울 종로경찰서장으로 재직하였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 소속 김신조 및 31명의 무장 공비들이 당시 청와대를 습격해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고 남파되자 청와대 바로 옆에서 이를 검문하다가 총격전이 벌어졌고 정종수 경사와 함께 총에 맞아 죽었다.
최용신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09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최용신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교육 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심어준 여성 독립운동가 최용신(1909~1935)의 삶과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7년에 개관하였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도에는 최용신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면서 역사적인 인물로 재조명 받았다.
최수봉 의거지 (옛 밀양경찰서 터)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0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의열단원인 최수봉 의사가 폭탄을 던진 의거지 밀양경찰서 터. 최수봉의사는 윤치형, 윤세형과 함께 1919년 3월 13일 밀양 장날에 일어난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주도자로 수배를 받게 되자 윤세주·윤치형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고 길림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폭탄제조법을 배워 밀양으로 다시 돌아온 최수봉의사는 박재혁의사의 부산경찰서 투탄사건(1920. 9) 소식을 듣고 거사를 도모하기로 결심하고 1920년 12월 27일에 밀양보통학교에 자리한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당시 밀양경찰서장이 경찰서 직원 19명을 사무실에 모아놓고 훈시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날을 거사일로 잡은 것이다. 밀양경찰서에 폭탄 2개를 연달아 던졌으나 폭탄은 불발되고 말았다. 일본경찰이 추격해오자 경찰서 부근의 민가로 들어가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대구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1921년 7월 8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대한민국정부는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다.
최낙종 애국지사 유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0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고성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삼일독립선언 후 1919년 3월 20일 구만면 국천 모래사장과 배둔장터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20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친일파가 만든 '상애회'에 대항하여 '동흥 노동동맹'을 창립하고 동포들의 권익 옹호 투쟁에 앞장섬.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최정원 애국지사 창의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68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고성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 1919년 3월 20일 고성군 구만면에서 만세운동 주동 - 1920년 10월,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22년 5월 순국 -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 추서
최면식선생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1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포천 출신 독립운동가 최면식 공적비. 최면식은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면암 최익현의 둘째 아들인 최영학의 아들로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월형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 후 1917년에 대한광복회에 가입하고 이병호와 함께 전라남도 광복회 군자금을 모금하고 무기를 조달하여 광복회장 채기중에게 증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 조직이 발각되어 또다시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공주형무소에서 1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 한 후 대한광복회 재건에 힘쓰다가 1921년 9월에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였다.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82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 공적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최면식의 독립운동 공적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최수봉 의사 추모 기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4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남 밀양(密陽) 사람이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향리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27세가 되는 해 사립동화학교(私立東和學校)에 입학하여 전홍균(全鴻均) 밑에서 2년간 수학한 후 다시 1912년 동래(東萊) 범어사(梵魚寺)의 불교학교인 명정학교(明正學校)를 졸업하였다. 또한 1913년 평양 숭실학교(平壤崇實學校)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 중 학교가 폐교당하자 중퇴하고 말았다. 그후 독립쟁취의 신념을 갖고 남만주 지방으로 망명한 그는 봉천(奉天)·안동(安東) 등지를 왕래하며 동지를 규합하기도 하였으며 한때 평안도 정주(定州)에서 광산노동 또는 우편 집배원 노릇도 하며 때를 기다렸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날 당시 의열단(義烈團)과 연락이 닿아 있던 고인덕(高仁德)이 폭약과 폭탄제조기를 갖고 모종의 거사를 준비중에 있었는데 이때 그는 동지 고인덕에게 즉각 자신의 독립투쟁의 결의를 전하고 고인덕으로부터 폭탄과 제조기를 전해받아 산속으로 들어가서 폭탄을 제조하여 송혜덕(宋惠德)에게 일단 보관을 요청하였다.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 서장이 전 서원을 모아놓고 훈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즉시 폭탄을 찾아 경찰서를 폭파하기로 결정한 그는 준비된 2개의 폭탄을 경찰서를 겨냥하여 던지고 밀양 서문(西門)으로 도피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추격을 받다 자결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피체당하고 말았다. 1921년 4월 16일 사형을 언도받은 그는 동년 7월 8일 오후 3시, 대구감옥 교수대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추강 김지섭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4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22년 상해로 가서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에 가입하고 상해 및 북경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1923년 왜적의 고관암살중요시설의 파괴계획을 하다가 비밀이 폭로되어 상해로 망명한 후 동년 12월에 도일하였다. 1924년 1월 5일 동경으로 와서 신년부터 제국의회가 동경에서 열리는데 조선총독부등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폭탄으로 폭사시키려다가 의회미개로 실패하고 1월 5일 저격목적을 변경하여 왜황궁성이중교에 나타나 투탄하였으나 불발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구속되었다. 동년 10월 6일 일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불복상고중 1928년 2월 10일 천엽형무소에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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