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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3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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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2년
주제 : 기타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52년 9월 2일 철마면 나암동 전투(무장공비와 교전)에서 조국과 내 고장을 지켜내고 순직한 경찰 1명과 의용경찰 6명의 숭고한 희생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기 위함
철산군 출신 호국용사 위령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포천시 명덕2리 철산군 동산에 자유통일을 외치며 반공전선에서 산화한 평안북도 철산군 출신의 젊은이를 추모하기 위해, 호국용사 위령탑을 건립했다. 평안북도 철산군 출신 호국용사위령탑건립위원회에서 공산학정을 못이겨 월남한 평안북도 철산 군민 2,000세대 가운데 전쟁 전 공산폭동과 6·25전쟁 시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중령 이덕영, 준위 정익상, 이병 정태진, 방위군 오근홍, 경감 정관주, 순경 정준호, 서북청년단원 김기원, 정춘숙, 학도병 한학봉 등 95위의 거룩한 뜻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986년 11월 29일 철산군민 묘지에 위령탑을 세웠다,
청산면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충청북도 옥천군
관할지청 : 충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옥천군 청산면 출신 독립유공자 3.1독립만세운동 기념
청송 무공수훈자 전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청송군 금곡동 무궁화동산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이 고장 출신 무공수훈자들을 기리기 위해 ‘청송군 무공수훈자 전공비’를 건립하였다. 청송군과 무공수훈자회 청송지회는 김종학, 이원세, 박갑생 등 무공수훈자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공수훈자건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00년 12월 26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청송 무공수훈자들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서서 싸우다가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청송항일의병기념공원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0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청송의진 항일의병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공원.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을미개혁이 단행되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거의를 촉구하는 안동의진 소모장인 유시연의 격문이 청송에 전해지자, 이에 자극받아 1896년 3월 16일(음력)에 심성지를 창의장으로 한 청송의진이 거의하였다. 그리고 또다른 청송의진인 허훈·허환 형제가 주도한 진보의진이 거의하였다. 청송의병은 김하락의 이천의진을 비롯해 각지의 의진과 연합의진을 결성하여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청송의진은 영덕전투에 참가하여 전과를 올렸으나 화전등 전투에서 관군의 기습을 받아 패전하였다. 청송의진은 관군의 추격을 피해 전전하다가 고종의 해산조칙을 내리자 해산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박연백,유시연, 박처사, 강진선, 김문호, 이세기, 이사옥, 강진수, 서종락 등 의병부대가 청송을 활동무대로 활약하였다. 2011년 6월 2일 청송군에서는 청송의병의 항일정신과 의병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청대사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994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남도 청양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청대사는 순흥 안씨 문중 출신 네 분 애국지사(건국훈장 애족장 안창식, 애국장 안항식, 애국장 안병찬, 애족장 안병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충청남도의 지원을 받아 순흥 안씨 종친회에서 건립하였음. 청양출신 안창식의 아들인 안병찬은 두 아들 병찬, 병림과 함께 1895년 을미의병에 투신했다. 선생은 1895년 여름부터 비밀리에 거의 할 뜻을 두고서 광호 등지로 가서 저자 사람을 앞세워 먼저 일어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고, 홍주의진의 선구자들인 박창로, 이봉학, 이세영 등과 긴밀히 연락을 취했습니다. 아들 병찬이 1895년 12월 1일 홍주성에 입성할 계획을 세우고 찾아오자 채광묵과 함께 모집해 놓은 민병 180명을 내놓아 홍주의병을 거의 하도록 도와 의진이 패하자 피체되었습니다. 안병찬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을 주도하여 3년형을 선고받고 고종의 특지로 석방되었으며, 1906년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의 참모로 활약하여 옥고를 치른 후 1919년 파리만국강화회의에 장서 서명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안병림 선생은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 및 돌격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안항식 선생은 1906년 4월 25일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로 활약하여 일제에 체포 후 대마도로 호송 감금되었다가 4년만에 귀국했습니다.
청안 만세운동 유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충청북도 괴산군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청안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주민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유적비. 3·1독립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되어가던 중인 3월 중순부터 청안에서도 만세시위가 계획되고 있었다. 청안의 이태갑, 김수백, 신강면 등은 3월 30일 오후 3시 반경, 청안 장날을 이용하여 장터에 모인 2,000여 군중을 선도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우편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경찰은 주도자를 체포하여 청안경찰서 주재소로 연행하자 격부한 시위군중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일제 경찰은 충주에서 급파된 수비대와 함께 무차별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90년 1월 1일 괴산군에서는 3·1독립운동을 일으킨 청안 면민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청은 김상한선생 창의 숭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3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제천 청풍 출신 의병장 김상한의 창의 숭모비. 김상한은 일찍이 벼슬길에 나아가 정언을 지냈으나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분격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동지를 규합하여 이강년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휘하에서 좌익장으로 활약하며 문경전투에 참가하였다. 1907년 3월 경상도지방 의병장에 추대되었으며 조령에 진지를 구축하고 4월에 일본군과 교전하여 수명의 적병을 사살했으며 11월에는 문경군 능노면에서 일본군 800여명과 격전하여 53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후 패전하여 남은 병력 100여명을 이끌고 단양으로 퇴각하였다. 1908년 9월 경상도, 충청도에서 재기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시골에 은신했다가 1917년 10월에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89년 1월 1일 대한노인회 제천시지회 청풍면분회에서 김상한 의병장의 애국 충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청소년 호국정신 교육장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남도 장흥군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한국전쟁 시 광주사범학교 2학년생 문영만군, 장흥 관산중학교 3학년생 오연차군 광주 숭일중학교 3학년생 김원주군 등 3인은 향토수호를 위해 학도대로 참전하여 용전분추하다 1951년 전사하였으나 그 동안 일정한 안장지가 없어 유치면 일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6년 3월 당시 장흥 경찰서장 이재길과 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고영국 등이 중심이 되어 흩어져 있던 3구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청송군 참전유공자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청송군 금곡리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이 고장 출신의 국가유공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참전유공자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는 6·25참전유공자 1,893명, 참전경찰관 145명, 베트남참전유공자 140명 등 이곳 출신 참전유공자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2008년 6월 13일에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 청송군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공산주의에 맞서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빛나는 전공을 세워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고, 경제발전을 초석을 다졌다. 청송군에서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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