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선택
서울
경기
충북
충남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인천
대전
광주
대구
울산
부산
세종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닫기
닫기
현충시설 소개
현충시설 소개
국내 현충시설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국외 참전시설
국외 참전시설 둘러보기
현충시설 함께하기
현충시설 활용 우수사례
관리실태 신고
사이버 추모관
OPEN API
전체 현충시설
홈 > 국내 현충시설 > 전체 현충시설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MAP
HOME
TOP
BOTTOM
시설 전체
공원
기념관
기타
동상
비석
사당
사적지
생가
장소
조형물
탑
주제 전체
3·1운동
6·25전쟁
6·25전쟁 및 월남전쟁
기타
문화운동
민족주의운동
사회운동
애국계몽운동
월남전쟁
월남참전
의병운동
의열투쟁
학생운동
한말구국운동
해외운동
지역 전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지자체 전체
VR 영상
유
무
안내판
유
무
제목
내용
검색 결과
총 2316건
Excel
전체 개수 : 2316
춘천농고 항일학생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춘천농공고등학교는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식민지 교육을 받는 가운데서도 투철한 항일정신으로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터지자 전교생이 만세 시위에 동참한 강원도 최초의 유일한 학교로, 이를 효시로 일본 교사 배척, 식민지 교육 반대, 광주학생사건연대투쟁, 비밀결사 상록회 사건, 독서회 사건, 일본 천황과 총독에게 보낸 통치반대 청원 사건 등 크고 작은 일련의 항일운동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른 많은 본교 애국학생들의 영혼을 추모하고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총동창회 동문들의 뜻을 모아 1995년 8월 25일 개교 85주년 및 광복 50년을 맞아 이 탑을 건립하였다.기단 1.5m, 탑신 5.4m로 매년 3월1일 동문회 주관으로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춘천의병대장 습재 이소응선생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52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895년의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 시해와 단발령의 강제로 배일감정이 폭발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투쟁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20일(음력 을미년 12월 16일)에 유중락(柳重洛)·이만응(李晩應) 등의 지방유생과 1,000여 명의 농민들에 의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소응은 척사위정의 대의를 내세워 일본을 오랑캐 왜노(倭奴)로 규정하고, 엄한 군율 밑에서 부대를 통솔하였다. 먼저 정부에서 개화관료인 조인승(曺寅承)을 춘천관찰사 겸 선유사로 임명하자 단발하고 부임한 조인승를 참형에 처하여 그 기세를 올렸다. 2월 8일에는 이겸제(李謙濟)가 인솔한 친위대 3개 중대의 공격으로 타격을 입고 흩어졌으나 다시 모여 부대가 정비되었다. 그 뒤 포천·영평·양광 등지에서 맹위를 떨쳤다. 또 일부 병력은 그 뒤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강릉에 이르렀고 경기도 여주·이천에도 진출하였다. 그러나 신우균(申羽均)·김구현(金龜鉉)이 지휘하는 관군의 공세가 치열해지고 전략 전술 및 무기의 열세로 점차 전력이 약화되었다. 한편,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문제도 곤란해져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와 협상하였으나 실패하자 2월 17일 부득이 제천의 유인석(柳麟錫) 부대로 이적하였고 부대는 종형 이진응(李晉應)이 지휘하였다. 이진응 다음에는 이진응의 아우 이경응(李景應)이 대장에 추대되어 지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소응 [李昭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에 춘천지구 전투에서 북한군의 남침을 3일간 저지시킴으로써 남침계획을 저지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춘천시에서 2000년 6월 26일 평화공원을 조성하였다. 중부전선을 담당한 국군 제6사단은 춘천에 제7연대를, 홍천 북동쪽에 제2연대를 각각 배치하고 제19연대는 사단예비로서 원주에 집결 보유하여 적목리로부터 진흑동까지 방어하고 있었다. 사단은 방어지역 서측의 북한강과 전방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소양강을 이용하여 제7연대는 소양강 북안에, 제2연대는 소양강 남안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하지만 좌일선의 제2연대는 6월 20일 사단에 예속되어 가까스로 이곳에서 제8연대와 진지교대를 마쳤으며, 예비인 제19연대도 5월 1일 예속된바 이들의 방어 및 전투태세는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6사단은 1948년 6월 14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제4여단으로 창설된 후 11월 20일 제6여단으로 개칭되었다가, 강원도 원주에서 1949년 5월 12일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은 예하 제2연대와 제7연대를 춘천 북방에 배치하여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춘천-홍천 지구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다가 육군본부의 철수명령에 따라 횡성-충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제2군단은 서울 점령에 집착한 나머지 제7사단을 홍천 동북쪽에서 역전시켜 홍천으로의 침공이 지연되고 군단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한 데다 사단의 기습적인 공세에 몰려 그들 전차의 충격력은 사라지고 뒤를 쫓는 데에 불과하였으며, 또한 측방타격이나 우회추격에 실패함으로써 사단전투능력의 회복이 예상외로 빨랐던 것이다. 어떻든 사단은 질서 있는 지연전으로 기간 중에 충주를 점령하여 아군을 동서로 양단하려던 그들의 기도를 무산시키는 데 주효하였던 것이다. 이후 북한군은 이와 같은 작전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 군단장 김광협 소장이 해임당하고 그 후임으로 김무정 중장을 임명하였으며 이보다 앞서 7월 초에 제2사단장 이청송 소장은 최현 소장으로, 제7사단장 전우 소장은 최충국 소장으로 각각 교체되었고, 7월 3일에는 제7사단을 제12사단으로 개칭하여 패전의 오욕을 씻으려 안간힘을 기울였다. 또한 북한군들이 제6사단 특히 제7연대의 선전 앞에 무릎을 꿇고 춘천바위라고까지 별명을 붙이게 된 것도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군이 3일간 한강을 건너지 못했다.
춘천사범학교 6·25학도병 참전기념추도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역사상 유례없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이었다. 당시 춘천사범학교 학생들은 조국을 수호하고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책과 연필 대신 총과 칼을 들고 분연히 일어섰다. 개전 초기 춘천사범 학생들의 자발적인 협력에 힘입어 3일간 춘천 방어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냄으로써 국군은 한강 이남 으로 철수할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건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3년 여의 전쟁기간 중 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마침내 조국 보위의 대의를 이루어 냈다. 또한 정전 후에는 교육계와 다른 분야에 종사하면서 조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에 한국전쟁 참전 학도병의 충성된 마음과 조국통일의 염원을 기리며, 이 조형물을 세운다.
춘우정 김선생 투수 순절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36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영상이 투신 자살하려 한 만경강 나루터 입구에 세운 순절비. 1910년 8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조선 양반과 귀족을 회유하기 위해 ‘천황 은사금’을 지급하였다. 김영상이 은사금을 거절하고 서자(書字)를 찢어버리자 일제는 그를 ‘불경죄’로 체포하여 동곡 헌병대에 구속시켰다. 이에 단식 투쟁으로 저항하자 일제는 군산 감옥으로 이송하고자 만경강 신참나루터에서 김영상을 나룻배에 태우고 만경강을 건너자 김영상은 강에 몸을 던졌다. 일본 경찰에 의해 구조되어 군산감옥에 투옥되었으며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투옥된 지 8일만에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78년 6월 30일 춘우정김영상선생 순국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는 김영상의 애국 충절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경강 나루터 입구 제방 위에 이 비를 세웠다.
충혼탑(설천면)
시설 : 탑
사건 연도 : 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조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고 목숨을 바치신 무주군 설천면 지역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애국정신과 그 뜻을 되새기기 위해 건립
충혼비(고산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2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고산면에서는 완주 읍내리에 6·25전쟁 기간에 산화한 고산면 출신 전몰용사의 영령을 추모하고 이곳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1952년 6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 기간 고산 면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고산면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충혼비(화산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완주군 화산면 출신으로 6.25전쟁에서 산화된 44명의 호국전몰용사영령을 추모하고 월남참전용사 39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으로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참전한 6.25전쟁용사들과 월남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한 이들을 기리는 비임
충혼의 빛(6·25 참전 유공 기념 조형물)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제천시 모산동 솔밭공원 내에 6·25전쟁에 참전한 유공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6·25 참전 유공 기념 종형물’을 건립하였다. 제천시 6·25참전유공기념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는 이곳 출신 강두구, 고덕규, 김용은, 송명식, 차승수(경찰), 장장식(철도원) 등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7년 8월 21일 그들의 넋을 ‘별’로 표현한 이 조형물을 준공하였다 6·25전쟁 기간 제천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군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충혼탑(횡성군)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68년
주제 : 기타
지역 : 강원도 횡성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충혼탑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서 조국의 평화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장렬하게 산화하신 횡성출신 군·경·민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68년 6월 6일 건립되었으나 규모가 작고 훼손부분이 많아 보훈시설로서 상징성이 떨어지므로 기존의 탑을 철거하고 새로 건립하였다. 이 탑의 형태는 사람 ‘인’자의 모습으로 호국의 념을 사람 ‘인’자와 횃불로 상징화하여 호국정신이 후대에 게승·발전됨을 표현하였고, 높이 6m, 폭 1,95m이며, 재료는 브론즈와 철재를 사용하였다. 위패실은 가로 12.35, 세로 7.30m, 높이 2.85m로 재료는 화강석과 고흥석, 유리를 사용하였다. 육·해·공군 및 경찰을 상징하는 4개의 동상이 있고 탑을 오르는 9개의 계단은 9개 읍면을 상징하며, 탑 앞쪽에는 한국전쟁 참전국의 국기를 게양하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시고 다시 한 번 이분들의 숭고한 애국 정신을 되새겨 진정한 나라사랑의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페이지 이동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