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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홍주의병출진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남도 홍성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홍덕문선생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64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동두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홍병준(1864~1923) 선생은 구한말의 애국지사로 자는 덕문(德文), 본관은 남양이며 동두천 출신이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천여 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刑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동두천노인회는 1975년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31번지에 추모비를 건립하여 홍병준 선생의 고귀한 순국이념과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렸다. 추모비는 동두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주의사총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남도 홍성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홍범식 고택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0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충청북도 괴산군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완 홍범식은 1910년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친일파들에 의한 경술국치에 항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열사로 남으신 분이다. 홍범식 선생의 자제분이셨던 벽초 홍명희 선생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1919년 이곳에서 괴산지역 3.1항쟁을 주도하였다.
홍천 경찰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강원도 홍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45.8.15 조국광목과 함께 창설된 홍천경찰서는 한국전쟁 전에는 38선을 넘어 화촌,서석,내면지역과 가리산 공작산 등으로 남침하는 북한 인민군 유격대 토벌작전을 군과 함께 수행하여 325명을 사살하고 63명을 생포하였으며 1950.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경주에 일시 주둔하면서 포항․안강지구 전투에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 방어에 기여하고 1951.5.27. 홍천수복과 동시 복귀하여 가리산․응봉산․대룡산 등지에서 패잔병 11명을 사살하고 8명을 생포하였다. 이러한 전공을 세운 400여명의 홍천경찰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무궁화의 고장 홍천을 지키는데 초석이 되었으며 안타깝게도 16명이 전사하였다. 이제 독립경찰 창설 60주년을 맞아 이곳 잿골 기슭에 충혼탑을 세워 조국수호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넔을 추모하고 참전 경찰관들의 전공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홍천 3·1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강원도 홍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년 4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 연10여일에 걸쳐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홍천읍에서는 차봉철, 서상우, 오창섭이 주동이 되었고 도로공사 부역꾼으로 가장한 북방농민 300여명이 이에 합세하여 독립만세가 전 군을 뒤덮었다. 동면에서는 민병숙, 민병태 의사가 피살되었고 내촌면 동창리에서는 천여명의 군중이 무자비한 왜적의 총탄으로 이순극, 전영균, 이기선, 연의진, 김자희, 전기홍, 양도준, 이려선, 팔열사가 장렬하게 숨졌다. 그리고 5천여명의 시위자 중에서 백 여명이 투옥되어 실형을 받았고 그 외 수많은 양민이 고문을 당하였다. 이 숭고한 선열들의 뜻을 이어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홍주성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89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남도 홍성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홍주성은 홍주의병이 1906년 5월 30일에서 31일까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적지로 국가지정사적 제231호이며, 길이 약 1, 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 있다. 성곽, 조양문, 아문이 1972년 사적 231호로 지정되었으며 안회당과 여하정이 1997년 추가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민종식의진은 1906년 3월 의병을 모아 남포와 보령 등지를 습격하여 병기를 확보하고 충청서부지역의 거점인 홍주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일본군이 이를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병력을 동원하였다. 5월 29일 홍주성 천변리에 도착한 일본군은 홍주성 북문과 동문으로 공격하여 성 안의 의병을 포위, 섬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은 성의 남문과 서문에 기관총 사격을 수차례 실시하여 의병의 주력을 성의 남서쪽으로 집중시킨 다음, 5월 31일 새벽 성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동문과 북문으로 일본군이 밀려들자 의병들은 대로를 차단하고 시가전을 전개하였으나 사상자가 급증하여 성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는 신돌석, 정용기 부대의 의병활동과 더불어 3대 의병전투의 하나로 손꼽힌다.
홍암나철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홍암나철은 1905년 을사늑약 후 일본정부와 국회에 장서를 보내 무도함을 힐책하고 1907년 을사오적을 주살하려다 실패 후 10년 유형되었다가 일 년 후 특사되었다. 또한 흔들리는 민족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단군 정신을 받들어 대종교를 창시하고 교육시설 등을 마련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 1962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이러한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시설이다.
화랑사단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고성군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1년 5월 공산군과 국군 사이에 밀고 밀리던 향로봉지구전투에서 우리 국군은 피로 고지를 사수하다 많은 장병들이 장렬히 산화, 이들 호국용사들의 넋을 추모하고 전승을 기념하기 화랑사단 장병들이 1959년 11월 전적비를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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