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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대광동문 순국 기념비 및 한국전쟁 참전 대광학생의 탑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대광학교 동문은 1997년 10월 대광동문순국기념비 및 한국전쟁참전 대광학생의 탑을 건립하여 대광고등학교 학생 신분으로서 자유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 및 순국한 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후배 동문들로 하여금 그 숭고한 애국정신을 계승하여 국가발전의 인재로서 커나갈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대구학생 운동지
시설 : 사적지
사건 연도 : 1941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일제의 전시체제가 한참 강화되어 가던 1941년 2월 15일 대구사범학교 재학중이던 김성권(金聖權)·권쾌복(權快福)·배학보(裵鶴甫)·문홍의(文洪義) 등이 당시 대구부 대봉정 소재 유흥수(柳興洙)의 하숙집에 모여 항일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조직으로는 당수·부당수 아래 총무·학술·문예·연구·경기부 등 각 부서를 두고 조직을 확대하여 타교생 및 일반 사회인사까지 포섭하여 활동하였다. 다혁당 관련자들은 1941년 7월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강두안(姜斗安, 1922~1944, 옥사), 고인옥(高麟玉, 1921~), 권쾌복(權快福, 1921~), 김근배(金根培, 1921~미상), 김성식(金聖植, 1922~), 김영복(金榮宓, 1919~), 김효식(金孝植, 1920~), 문덕길(文德吉, 1921~), 문홍의(文洪義, 1921~), 박우전(朴祐雋, 1920~), 박제민(朴濟民, 1919~), 박찬웅(朴贊雄, 1919~1943, 옥사), 박효준(朴孝濬, 1924~), 배학보(裵鶴甫, 1920~), 서진구(徐鎭九, 1921~1944, 옥사), 안진강(安津江, 1922~), 양명복(梁命福, 1921~), 오용수(吳龍洙, 1922~미상), 유흥수(柳興洙, 1922~), 윤덕배(尹德裵, 1921~), 윤영석(尹永碩, 1922~), 이도혁(李道赫, 1922~), 이동우(李東雨, 1922~), 이무영(李茂榮, 1921~), 이원호(李元鎬, 1923~), 이종악(李鍾岳, 1923~), 이주호(李柱鎬, 1921~), 이태길(李泰吉, 1920~ ), 이홍빈(李洪彬, 1923~), 임병찬(林炳讚, 1922~), 장세파(張世播, 1919~1945), 조강제(趙崗濟, 1923~1950), 최낙철(崔洛哲, 1921), 최대석(崔大碩, 1923~), 최영백(崔榮百, 1921~)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41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38년 3월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고 조선의 민족성이 담겨있는 소설이나 시, 역사서 등을 읽는 것은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이에 대구사범학교에서는 문예부를 시작으로 연구회, 다혁당 등 3개의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문예부에서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탐구, 그리고 당시 조선의 정세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항일 정신을 고취하였다. 연구회는 독립 쟁취라는 사명을 위해 자신들의 분야에서 심층적 연구를 통해 지식과 힘을 키웠다. 다혁당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군사 훈련도 실시하였다. 1941년 일제 경찰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을 한 사실을 알아낸 후 비밀 결사의 회원들, 조선인 교직원, 학부모를 모두 포함하여 총 300여명을 체포하는 ‘대구사범학교 사건’을 일으켰다. 이 중 35명이 구속되었으며, 그 중 5명은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옥에서 순국하였다. 이 탑은 대구사범학교재학생 박효준 등이 항일결사 모임을 조직하여 일제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한 데 대한 공훈을 기리고 옥중 순국한 강두안, 박제민, 박찬웅, 서진구, 장세파 등 5인에 대한 추모를 위하여 건립하였다.
대의사(인한수의사현충비)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881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대성사는 인한수와 장문환의 영정이 있는 사당으로 2009년에 준공되었다. 인한수는 1881년 고덕면 상궁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을 때 4월 3일 예산군 고덕면 장날에 대천장터에 모인 시위군중을 이끌고 대천교 옆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대열의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그 때 일본헌병과 일경들이 휘두른 창검으로 인하여 많은 군중이 부상당하는 것을 보고 격분한 나머지 말을 타고 있던 일본군 수비대장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끌어내려 내동댕이치자 말에서 떨어진 수비대장이 군도로 목을 찔러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문환은 충남 예산 사람으로 1919년 4월 3일 예산군 고덕면 장날에 대천장터에 모인 1, 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시위자 7명이 일경에게 검거되자 시위군중과 함께 주재소에서 시위를 하는 등 활동하였다. 이어 일본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시위자 한명이 순국하자 격분한 나머지 시위군중 15명과 함께 시체를 헌병주재소로 찾아가 항의하고 주재소장을 구타하다가 피체되었다. 이해 5월 2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대전지구전투 호국영웅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전광역시 서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전지구전투는 1950년 7월 16일 금강방어선이 무너지자 미 제24사단 [사단장 소장 딘 (William F. Dean)]이 17일에 대전으로 물러나 방어진을 치고 수행한 전투이다. 이 전선에서 다시 한 번 북한군을 막아보려다가 적의 포위망 속에 빠지게 되는 고전 끝에 20일에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7월 20일까지 지연임무를 수행하여 미 제1기병사단이 영동 일대에 투입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호국영웅비는 1950. 7. 17. ~7. 20. 기간 중 대전지구전투에 참전하여 용감히 싸우다 산화한 미군 참전용사(미 제24사단 등)의 넋을 기리고 그희생정신과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무공수훈 국가유공자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경기도 파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파주시 장곡리 장곡체육공원 내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유공자와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이 고장 출신 무공수훈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무공수훈 국가유공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회 파주시 지부는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8년 1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파주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워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대한해협 전승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부산시 중구 영주동 중앙공원 내에 최초의 해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해군 제3함대 사령부에서 1988년 12월 31일 이 비를 세웠다. 1950년 6월 25일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남해안에 유격대를 침투시켜 후방을 교란하려 하였다. 동해 경비를 증강하기 위해 구월산함, 고성함과 함께 출동중이던 해군 백두산함은 25일 오후 8시 12분 부산 동래방면 30마일 해상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무장선박(무장 유격대 600여 명 탑승)을 조우하여 5시간여의 야간검색, 추격 및 교전 끝에 26일 새벽 1시 38분 부산 동남방 11마일 해상에서 격침함으로써 창군 초기 해상경비와 훈련만을 거듭하던 해군 최초의 전과로 6·25 개전초기 북한군 유격대의 후방교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유엔군의 젖줄이었던 부산항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유엔 해군과 더불어 제해권을 장악하게 된 경위가 되었다. 해군 창설후 최초로 성공한 단독 해상작전이었던 해전을 영원히 기리고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해 당시의 해전 해역과 인접한 부산중앙공원(옛명칭 : 대청공원)에 전승비를 건립하였다.
대성산지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화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대성산 지구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화천군과 육군 제8305부대에서 1980년 8월 15일 이 비를 세웠다. 대성산 지구 전투는 1951년 6월 9일 국군 제2사단 네2, 제3대대가 1041고지에서 활동중인 중공군 제20군 58사단 177연대의 적군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 벌였던 전투다. 국군은 선제공격을 개시하여 1041고지와 신월동 및 865고지를 탈취한 후 6월 14일까지 6일간 연이어 계속된 전투에서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승양고개, 삼천봉, 비로봉 일대를 확보하면서 김화지역을 적으로부터 사수한 전투다. 사살 453명, 생포 19명, 55점의 무기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아군 피해로는 전사 38명, 전상 123명에 그쳤다. 육군 제15사단에서는 대성산 지구 전투장병들의 전공을 찬양하고 조국수호를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 그 위훈을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 이 비를 세웠다.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41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이 비는 1941년 2월 대구사범학교 재학생 박효준 등 35명이 항일결사 모임을 조직하여 일제 식민통치를 반대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한 데 대한 공훈을 기리고 옥중 순국한 강두안, 박제민, 박찬웅 서민구, 장세파 등 5인에 대한 추모하기 위해 1973년 11월 3일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교정에 건립되었다. 대구사범학교 내에는 1940년 11월 8, 9, 10기생들로 구성된 문예부, 1941년 1월 8기생이 중심이 된 연구회, 1941년 2월 조직된 9기생의 다혁당이라는 비밀결사단체가 있었다. 이들은 일본 패망을 예견하고 이를 대비하여 민족의식 앙양과 독립을 위한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조직한 것이었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회보 반딧불이 일경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문예부, 연구회, 다혁당 관련자 35명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고 이들 다수가 옥고를 치렀으며 그 중 강두안, 박제민, 박찬웅 서진구, 장세파 5인이 옥중 순국하였다.
대둔산 승전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6·25전쟁 직후 6년간 벌어진 공비토벌 작전으로 희생된 호국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충남지방경찰청에서 1986년 6월 23일 탑을 건립하였다. 1950년 9월부터 1955년 1월까지 약 6년간 빨치산과 수백 회의 혈전을 거듭하며 대둔산 지역의 빨치산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전투경찰대원들은 조국수호와 향토방위의 일념으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용전분투하여 사살 2, 287명, 생포 1, 025명 이외에 다량의 무기탄약과 장비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 작전 중에 경찰관, 의용경찰, 애국청년 등 1, 376명이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였다. 충청남도 경찰청에서는 당시 격전지였던 대둔산 기슭에 승전탑을 건립하여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 호국영령의 전공을 길이 선양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충절의 교육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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