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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독립지사 여세병·여찬엽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7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의령군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상남도 의령(宜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14일의 의령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3일 누이동생 구은득(具銀得)의 문병 차 상경하였다가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구여순(具汝淳)과 그의 이종동생 이화경(李華卿)에 의해 계획되었다. 그들은 귀향 즉시 이곳의 청년 유지들인 정용식(鄭容軾)·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 등과 만나, 의령읍 장날인 3월 14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들은 당시 용덕면(龍德面) 면장이던 강제형(姜齊馨)에게 독립선언서의 등사를 부탁하여 그의 협조로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수백매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이 계획을 알리고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 찬성한 그는, 3월 14일 오후 1시경, 의령장터에서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의령공립보통학교 학생 3백여명이 가세하였고, 인근의 주민들도 모여들어 시위군중은 점차 3천여명으로 늘어났다. 시위군중은 장터와 읍내를 시위행진하고 경찰서 앞에 이르러 독립만세를 외친 뒤 자진 해산하였다. 이튿날 그는 다시 의령향교(宜寧鄕校) 앞에 모인 1천 5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서와 군청을 시위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유공자 성암 박창규장로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0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40년 4월 기독교교회 전도사로 신사참배거부 활동을 박창규장로를 추모하기위해 건립하였다. 일황불경죄 및 일본국체변혁선동죄로 피체되어 1942. 9. 30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기도 하였다.
독립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예천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경북 예천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학생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들 가운데 권오정, 권혁무(權赫武, 1924~1985), 기성용, 김국경, 김철상, 김칠종(金七鍾), 이구성(李九成), 이만섭, 이병태(李炳泰, 1878~1968), 이봉래, 이순성, 이준형(李俊衡, 1883~1940), 임우경, 장진성(張進聖, 1895~1943), 장진우(張進瑀, 1866~1945), 정규원, 정진완(鄭鎭琬) 등은 이 비에 그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만파루복원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88년 6월 30일 이 비를 세웠다.
독립유공자 추모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0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전북 진안 지역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학생운동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들 가운데 독립유공자는 다음과 같다. 강신홍(姜信洪, 1923~1980), 김경선(金京先, 1885~미상), 김규현(金奎鉉, 1879~1950), 김사범(金士範), 김암우(金岩宇, 1887~미상), 김영필(金永弼, 1896~1976), 김옥현(金玉現, 1878~1907), 명경안(明敬安, 1852~미상), 박동근(朴東根, 1887~미상), 박재열(朴在烈, 1907~1988), 박재춘(朴在春, 1886~1967), 서성일(徐聖一, 미상~1908), 신치수(辛致守, 1874~미상), 심우상(沈尤相, 1888~미상), 안성(安盛, 1926~), 안왈오(安曰五, 1867~미상), 안일(安鎰, 1924~), 양인문(梁仁文, 1887~1944), 오기열(吳基烈, 1888~1950), 이옥동(李玉童, 1922~), 임종문(林鍾文, 1886~1908), 전영상(全永祥, 1885~1958), 정진희(鄭鎭喜, 1885~1940), 조경화(趙京化, 1862~미상), 채도석(蔡道錫, 1915~1984), 최병무(崔秉茂, 1922~), 하준태(河俊太, 1873~미상), 한청여(韓淸汝, 1863~미상), 황준성(黃俊聖, 1897~1910) 진안군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 1997년 8월 15일 이 탑을 세웠다.
독립지사 윤병호선생의 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9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경상남도 남해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윤병호는 1909년 백산 안희제·남형우·서상일·김동삼·박중화 등 80여 명의 동지들이 참가한 비밀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직후에는 부산에서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에 지배인 겸 중역으로서 참여하였다. 이 당시 백산상회는 단순한 무역회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주요 공급처였다. 1919년 11월 안희제와 함께 기미육영회를 조직하여 애국청년들을 양성하기 위해 다수의 유학생을 외국에 파견하였다. 1929년 10월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할 때 여기에 참가하여 국어사전 편찬사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되어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고 1943년 9월 18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 같은 윤병호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운동 기념비(영양)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85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양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양군은 1985년 11월 1일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산67-9에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의병을 모집하여 500여명을 이끌고 영양, 울진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이현규 의병장의 공적을 기리고 계승 발전하기 위해 독립운동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현규 선생(1874~1917)은 1905년 12월 중순 울진의 불영사에서 안동·청송·진보·영양 등지에서 모여든 500여 명의 병력으로 창의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영양 울진 왜관 영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왜관전투 때 일본군의 역습을 받아 본인은 총상을 입었고 많은 의병을 잃었다. 영일군 청하면에 피신하여 상처를 치료하던 중 순국하였다.
독립투사 최천택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20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최천택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였는데 구금과 구속 기록만 무려 54회에 이를 정도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그가 처음 구속된 때는 부산공립상업학교(옛 부산상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2년 금서인 동국역사를 등사해 배포하다 구속되었다. 1920년 박재혁·김영주 등과 함께 부산경찰서 사무실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일로 인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최천택은 의열단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고 부산지방에서 전개된 청년운동 및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7월에 열린 신간회 부산지회 설립총회에서 준비위원을 하였고 서무부 담당, 부회장, 부산지회 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2003년이 되어서야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을 받았다.
독립운동 애국지사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83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충남 부여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학생운동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부여군 충효회원들이 독립운동 애국지사 추모비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11월 13일 이 비를 세웠다.
독립투사 12대장 권석도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0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합천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권석도는 경남 함양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명은 명구이다. 한일신협약으로 군대가 해산되던 1907년 8월 김동신 의병진에 들어가 고광순 휘하에서 지리산 연곡사와 쌍계사 등지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10월 고광순이 전사하자 의병진을 정비하고 이학로·김경각·우수보·박매지 등과 지리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서 박인환 의병진과 합류하고 박인환과 의병들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어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항쟁하였다. 1908년 6월 하동군 일대에서 무기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어 구금 20여 일 만인 7월 9일 하동주재소를 탈출하다가 가슴에 총상을 입기도 하였다. 1909년 3월 다시 이학로 의병장과 합세하여 진주 동양곡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으며, 5월에는 박매지·이학로 등 수명과 함께 진주시 산기동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 일본군 수비대와 마주쳐 피신하였다. 그 후 행상으로 변장하고 은밀하게 활동을 계속하다 1909년 10월 진주에서 다시 체포되어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16년 6월 24일 가석방되었으나, 1918년 2월 다시 강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체포되어 10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12월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1986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운동 합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87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영양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독립지사기념사업 영양군 추진위원회는 1987년 영양군 영양읍 서부리 123에 남자현(1962년 대통령장) 한말 의병장 김도현(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등 영양 출신 독립유공자 107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합동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기념비에는 107명의 이름을 새겨 넣어 후세의 귀감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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