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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6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전라남도 영광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철은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서 출생하였다. 1912년 서울에서 경성법률전수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1917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창당하였고 1918년 미국대통령 윌슨의 특사 크레인을 초청하여 윌슨에게 보내는 대한의 자주독립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전달하였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교통부차장, 교통부총장대리, 군무장, 재무장, 무임소장, 국무원 비서장등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 중국인과 공동항일전선을 형성하여 한중항일대동맹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봉창의사의 일황 저격사건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폭살 의거를 김구 선생과 같이 주도하였다. 1934년 중국 항주에 있는 광자병원에서 급성폐염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대한이산 묘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94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산묘는 단군, 태조, 세종, 고종의 위패를 모신 회덕전, 조선 개국이후 충신과 유림 40위의 위패를 모신 영모사,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항거한 애국선열 34위의 위패를 모신 영광사로 이루어져 있다. 유림회는 이들을 추모하고 제사하기 위해서 1946년 이 사우를 세웠다.
대한국사 윤현진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2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관할지청 : 울산보훈지청
시설내용 : 윤현진은 1892년 양산군 상북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 일본 동경 명치대학교에서 유학하였다. 유학 중 조선유학생학우회를 조직해 활동하였으며, 1909년 백산 안희제 등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다. 양산에 의춘학원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3·1운동 때는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다 중국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가하였다. 1919년 4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고, 이어 초대 재무차장에 선임되었다. 이어 임시정부 상임위원회에서 재무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제2차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다시 내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동년 5월에는 구급의연금모집위원이 되어 어려운 임시정부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0년에는 독립신문사를 주식회사로 확장하고 1921년 5월에는 국민대표회의기성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같은 해 중한국민호조사를 결성, 중국과 같이 공동의 적인 일본을 섬멸할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할 것을 결의하였다.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그는 건강이 나빠져 상해에서 3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윤현진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대한국사 윤현진선생 기념비는 구국투쟁에 헌신한 윤현진을 추모하기 위해 양산군민 성금으로 건립하였다.
대호지·천의장터4·4독립만세운동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4월 4일 대호지면 광장에서 이인정, 송재만, 남주원 등이 중심이 돼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서울 파고다공원의 3.1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남주원, 이두하, 남상직, 남상락 등이 독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천의장날에 결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4월 4일 대호지 광장에서 아침 9시를 기해 600여 명이 모여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애국가를 제창 곧 바로 만세시위에 들어가 정미면 천의시장까지 진출하였다. 오후 4시 진압하기 위해 온 당진경찰서 순사의 권총 발사로 시위대 4명이 중상을 입으면서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투석전으로 대응하여 천의일경주재소까지 파괴했다. 시위로 인해 구속 입건된 열사만도 400여 명이 넘었고 현장 학살 1명, 옥중 고문치사 3명, 확인된 수형인이 39명, 태형 90대 이상이 88명으로 총 200명이 옥고 혹은 태형을 치렀다. 대호지4.4만세운동기념사업회는 1995년 4월 4일 당진군 정미면 천의리 243-2(당시 일경 주재소 자리)에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을 건립하여 대호지 독립만세운동에서 순국, 부상당한 독립운동 유공자들의 넋을 추모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2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시흥시 옥구공원 내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이 고장 출신 무공수훈자들을 기리기 위해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회 시흥시 지회는 무공수훈자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공수훈자건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02년 12월 24일 공적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시흥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무공수훈자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4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경상북도 봉화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무공수훈자 봉화군지회는 2004년 11월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호국동산에 6·25 전쟁 당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적의 침략에 맞서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던 무공수훈자와 세계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베트남전에서 참전한 무공수훈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무공수훈자 전공비를 건립하였다.
대한제국군서울시가전투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기타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07년 통감부가 대한제국 군대해산을 통고하자 제1연대 1대대장 박승환은 대한제국군의 해산 소식에 격분해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 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자결을 택했다. 이를 본 장병들이 대대 일부 장교들의 지휘에 따라 무기고를 부수고 총을 꺼내 일본군과 교전을 시작하였다. 대한제국군 장병들이 분투했으나 현격한 전력의 차이로 인하여 시가전은 일본군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대한제국군은 장교 11명 등 68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해산된 대한제국의 군인들은 의병에 합류했고 항일의병의 전력이 예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대부면사무소3.1운동만세시위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467에 위치한 대부면사무소는 3·1운동 당시 대부면민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했던 시위지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부면사무소 청사 건물로, 대부동주민센터 앞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면 좌측으로는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와 선정비가 있다. 그 역사적의 가치가 커서 2002년 9월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7호로, 2013년 2월 18일에 현충시설(3.1 운동 만세시위지)로 지정되었다. 대부면의 김윤규·노병상·홍원표 등 3인은 1919년 3월 13일 대부면 영전리에서 만나 독립만세운동을 결의하고 이날 밤 11시 김윤규의 집에서 포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4일 오전 3시경 집밖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치니 이곳 주민들이 합세하여 권도일의 집 앞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대부면사무소 앞에서도 시위하였다. 이로 인해 김윤규 노병상 홍원표가 체포되어 각각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전보훈공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대전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전시 사정동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유공자와 전몰용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전보훈공원’을 건립하였다. 대전광역시는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8년 11월 6일 보훈공원을 준공했다. 대전 보훈공원은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기리기 위하여 중구 선화동에 있던 영렬탑을 선화용두지구재정비 촉진사업으로 인해 보문산공원 내 사정동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조성한 추모공원이다. 6·25전쟁에서 대전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워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대한의사 김한익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0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한익은 경상남도 함양 사람이다. 1919년 3월 28일 함양 장날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만세를 외쳤다. 의거를 주도하였던 정순길, 윤보현, 정순귀, 노경식 등은 1교 다리옆(구장터) 에서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를 선창하다가 일본군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김한익은 함양읍 만세사건을 보고 집에서 크고 작은 태극기를 많이 만들어 가지고 4월 2일 장터로 갔다. 정오쯤 3천여 명의 사람이 모여들자 만들어 온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를 선창하니 주민들이 호응하였다.. 김한익이 긴급 출동한 헌병들에게 붙잡혀 1년 6월의 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룬 다음 출옥하였으나 혹독한 고문과 매질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불구의 몸으로 생활하다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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