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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문충사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836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대전광역시 동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문충사는 한말에 일제에 항거한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두 형제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후손으로 형 송병선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의 처단과 국권회복을 바라는 상소문을 올리고 난 후 국권을 빼앗김에 통분해 세 차례 다량의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했다. 동생 송병순은 1888년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학문연구에 몰두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성토하는 격문을 지어 8도에 돌렸다. 1910년 망국의 비보를 듣고 통분하여 형의 뒤를 따라 음독 자결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문충사는 원래 1908년 충청북도 영동에 건립되었는데, 송병선의 순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66년 그의 순국지인 대전시 동구 용운동으로 옮겨졌다. 입구에 홍살문이 서 있고, 그 옆에 정면 5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인 외삼문 안에 용동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이 있으며, 그 뒤의 내삼문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다.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었다.
문경시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문경시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문경시 점촌동에 6·25전쟁 기간에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전몰용사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문경시는 이곳 출신 호국용사의 거룩한 희생과 위국헌신 정신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1967년 6월 6일 충혼탑을 세웠다. 6·25전쟁 기간 문경 시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문경시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19년 4월 26일 미대동 채갑원, 채희각, 채봉식, 채학기 등 4명이 채갑원의 집에 모여 거사 모의를 한 뒤 밤 10시경 마을 동쪽 여봉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외침은 28일까지 이어졌으며, 채경식, 채명원, 채송대와 권재갑 등 4명이 합세하여 8명이 여봉산에 올라 또다시 수없이 만세를 외친 후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 날 8명은 일경에게 검거되었고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각각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루었다.
미 제2사단 6·25 참전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파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국전쟁기간동안 미제2보병사단 장병들이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전사한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미국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가평은 1·4후퇴 이후 6·25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던 용문산-가평지구 전투의 현장이다. 해당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영연방 4개국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족적을 가평에 남긴 미군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다. 사실 美 2사단 72전차대대는 1951년 4월 가평지구 전투에서 목동~대원사 능선을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을 격퇴함으로써 가평지구 전투 승전의 일익을 담당했다. 또한 美 213야전포병대대는 1951년 5월 26일 북면 홍적리 일대에서 240명의 병력으로 4000여 중공군을 섬멸했다. 특히 단 한명의 전사자도 없이 중공군 1180명을 사상(死傷)함으로써 ‘가평의 기적’이라 명명되며, 당시 대대를 이끈 J. Frank Dally 준장(전투 당시 중령)은 2015년 5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가평에 주둔했던 美 40사단은 주로 타 지역에서 활약했지만 전투 이외의 방식으로 가평에 ‘2달러의 기적’을 일궈냈다. 전화의 폐허에서도 학구열을 놓지 않은 한국 학생들의 모습에 감동받은 美 40사단은 Joseph Cleland 사단장의 주도 하에 15000명 장병들이 2달러 씩 갹출해서 가이사중고등학교(現 가평고등학교)를 세운 것이다. 학교의 명칭도 美 40사단의 첫 전사자인 Kenneth Kaiser Jr 하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美 40사단 참전용사들은 1987년부터 매년 방한시마다 가평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자신들의 젊음(혹은 생명)을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의 발전된 오늘이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것이다. 보훈, 즉 은혜갚음의 첫 걸음은 부채의식을 가짐으로써 수혜(受惠)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이에 미군이 가평에 남긴 족적을 기억하고, 65년간 이어온 특별한 인연을 키워나가기 위한 노력이 최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가평고등학교 졸업식과 연계한 미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여기에 지난 2월 4일 건립한 ‘미국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美 213대대·2사단·40사단이 가평 땅에 남긴 공헌은 물론 이들이 가평에 베푼 정(情)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한 것이다. 한편 본 기념비는 참전 미군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참전 과정에서의 희생을 기리며, 미국과의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이어나가는 국제보훈의 정책적 상징물이기도 하다.
미공병부대 참전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용산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50년 6월 25일 수도 서울이 북괴군의 전면적인 기습공격으로 점령당하자 우리군은 적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6월 28일 부득이 한강인도교를 폭파하였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과 함께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으나 중공군의 침공으로 또 다시 수도를 점령당하였다. 이 진퇴를 거듭하던 긴박했던 시기에 미공병부대들은 한강에 부교와 도보교를 설치하여 군사작전을 도왔고 특히 1.4후퇴 시에는 수백만명의 피난민이 이 다리를 건너 생명과 재산을 구할 수 있었다. 공산군이 한반도 이남에서 완전히 쫓겨난 1951년 6월, 미 공병부대들은 한강인도교의 철교를 복구하여 우리나라 경제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이에 한국전쟁 중 보여준 미 공병부대 장병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면서 이를 기리기 위해 이 기념비를 세운다
미국군 참전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파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국방부는 1975년 10월 3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90-1 (임진각 내)에 6·25전쟁 기간(1950~1953) 참전한 미국 군인의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길이 추모하기 위하여 이 참전비를 건립하였다. 미국은 6·25 전쟁을 맞아 유엔 참전국 중 가장 먼저 참전했으며 가장 큰 규모의 지상군, 해군, 공군을 파병했다. 유엔군 사령관으로 맥아더 장군을 임명함으로써 6·25 전쟁을 주도하게 되었다. 오산 부근 죽미령에서 스미스 특수 임무 부대가 최초로 북한군과 교전을 시작한 것을 비롯, 낙동강 방어, 인천상륙작전, 북진, 1·4 후퇴, 휴전 등 6·25 전쟁 전 과정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전쟁 기간 참전 연인원 57만 2000명, 사상자 14만 2091(사망 3만3629명, 부상10만9284명, 실종 5178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미 제25사단 한강도하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남양주시는 1986년 3월 7일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 347-2(미 제25사단의 도하지점)에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하여 감행한 한강도하작전에 참전한 미 제25사단 용사들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알리고자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미 제8군이 1951년 3월 7일부터 서울 재탈환을 위한 리퍼작전을 실시하였다. 당시 제8군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중부의 미 제9군단 예하 25보병사단으로 하여금 양수리와 팔당 부근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하도록 해 서울 동측을 위협하는 한편, 한강 남안 진지를 확보하고 있던 미 제1군단( 한국군 제1보병사단·미 제3보병사단)을 투입시켜 큰 피해 없이 서울을 탈환하려 했다. 그러자 중·조연합사령관인 팽덕회는 서울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미 제25 보병사단의 도하와 중동부 지역에서 감행된 미 제10 군단과 한국군 제1 군단의 공격에 대해 지연전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유엔군은 1951년 3월 15일 격전이나 희생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재탈환할 수 있었다.
미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 충령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 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당시 미군통역관으로 근무한 이종만씨가 1952년 12월 22일, 포항역 광장에 이 충령비를 건립하였다. 1969년 4월 22일 송도동의 현 위치로 이전했으며, 한국자유총연맹 포항시지회 송도동분회에서는 매년 6월 6일 현충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1950년 8월 3일 제214해병전투기대대의 콜세어 전투기 8대가 발진하여 첫 공격을 개시한 미 제1해병항공단은 낙동강 방어선의 아군을 근접지원 했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유엔군을 근접지원 했다. 미 제1해병사단이 서울을 수복할 때 하늘에서 근접지원을 했다. 1950년 9월 23일에 김포비행장으로 기지를 옮겼다. 1950년 10월 26일 미 제1해병사단이 원산에 상륙하자 원산 인근의 연포비행장으로 기지를 옮겼다. 제1해병사단을 비롯하여 미 제10군단이 장진호에서 철수할 때 출격하여 근접지원 공격을 했고 12월 17일 연포비행장이 폐쇄된 후로는 3척의 항공모함 갑판으로 기지를 옮겨 흥남철수가 진행되는 동안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미공군 6.25참전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평택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미공군 6.25전쟁 참전 기념 및 순직 공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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