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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미육군공병부대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국전쟁 시 미 육군 공병은 최선봉에서 적과 싸우며 기동부대의 전진로와 보급로를 건설하고, 후퇴 시에는 아군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장애물을 설치하며 가장 늦게 전장을 떠나는 방패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한탄강 일대의 험준한 산악와 단애로 형성된 하천은 공병의 이무수행을 매우 어렵게 하였다. 그러나 전통에 빛나는 미 육군 공병부대는 성공적으로 모든 임무를 수행하여 공격부대 작전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미 육군 공병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한 교량과 도로를 통해 수많은 피난민이 남에서 자유를 얻었고, 특히 전후에까지 그들은 우리에게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여 한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한탄강 일대의 험준한 지형에서 작전에 참가했던 미 육군 공병부대 용사들을 기리며 이 기념비를 세운다.
미 육사 출신 장교 6.25참전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노원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도 미 육사(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임관한 365명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쟁 중에 1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그 중 41명이 전사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96년 10월 2일 6.25찬전 동기생들이 추모비를 헌정하였다.
미아리전투지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성북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미아리 전투는 한국 전쟁 초기 북한군의 기습적인 전면 남침으로 3·8도 분계선에 인접한 전선이 무너지게 되자, 3·8도 분계선으로부터 45km 거리에 있는 수도 서울에 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육군본부는 이응준(李應俊) 소장이 이끄는 국군 제5사단과 유재흥(劉載興) 준장이 이끄는 제7사단이 미아리고개에서 치른 최후의 서울 방어 전투 명령을 내렸다. 국군 미아리지구 전투사령부는 미아리에서 국군 방어병력이 북한군에게 밀리자 서울 방어의 최종목표인 미아리 방어선의 유지를 위해 길음교를 폭파하기로 하였다. 국군 공병대는 북한군 전차부대가 1950년 6월 27일 저녁 수유리를 통과하여 길음교에 도착하자 명령에 따라 교량폭파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선두부대가 이를 미리 알아채고 도화선을 중간에서 끊어버리면서 교량 폭파에 실패하고 말았다. 교량 폭파에 실패하자 길음교 일대에 매복하고 있던 국군 제1연대와 제15연대는 모든 화기를 동원해 일제히 20여 분 동안 집중 공격했으나 단 한대의 전차도 파괴하지 못했다. 이 때 제15연대 5중대 김정순 대위가 지휘하는 결사대가 전차에 올라 공격하다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6월 28일 새벽 1시경 북한군이 길음교-미아리고개를 넘어 돈암동으로 진입하면서 미아리를 중심으로 한 서울방어선은 붕괴되었다.
미트루만대통령표창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양구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표창장 한국군 제2사단 제31연대 제1중대 귀중대는 서기 1951년 5월 17일 174고지 방어전투에 있어서 2개 중대가 야음을 이용 은밀히 포위육박하여 왔을 때 중대 전원이 일심단결 부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에서도 용전분투하여 고지를 사수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대의 지원을 받아 중적을 포획 사살 다대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용감한 행동은 널리 외국군에 알려졌으며 혁혁한 전공은 한국전쟁 전사상에 길이 빛날것이므로 이 전공에 대하여 최대한의 찬사와 경의를 표하며 표창장을 수여하나이다. 서기 1951년 5월 27일 미국대통령 트루먼
민주지산 위령비(영동군)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8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북도 영동군
관할지청 : 충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98년 4월 1일 제5공수특전여단(현 국제평화지원단) 23특전대대 내륙전술훈련간 예상치 못한 기상악화로 인하여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전우 고 소령 김광석 등 6위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흑룡부대원으로서의 기상과 뜻을 기리고자 전 장병의 성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매년 4월 1일 이곳에서 특수전사령부 주관하 영동군청, 영동지부 특전동지회, 6·25참전 전우회, 희생자 유가족, 부대장병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세 안재홍선생 생가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892년
주제 : 사회운동
지역 : 경기도 평택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안재홍은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이며 언론인, 역사가이다. 그는 1922년 시대일보의 논설기자로 입사하여 언론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9월 조선일보에 주필 겸 이사로 역임하면서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신간회 활동의 주역이었으며, 조선어학회, 흥업구락부 등에서도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사회단체와 독립운동 외에도 사학자로서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였고 고적지 답사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안재홍은 삶의 대부분을 생가에서 보냈다. 이 생가는 원래 대문간 채까지 있던 큰 집이었으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가옥의 상량문에 의하면 안채는 1914년에 사랑채는 1932년에 건립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배치를 이루었으며, 안채는‘ㄱ’자형 사랑채는 ‘ㅡ’자형의 평면 가옥으로 전형적인 경기도지방의 살림집 건축형태이다. 안재홍 생가는 구한말 중부지방의 개량 한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우리 전통한옥의 구조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민족운동가 구연영의사 순국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6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경기도 이천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구연영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가 단발령을 공포하자 이에 격분하여 김하락을 비롯하여 조성학․김태원․신용희 등의 우국지사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이천으로 내려갔다. 그는 양근․지평 일대로 들어가 그 지역에서 300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다른 의병들과 함께 이천수창의소라는 연합의진을 세우고 중군장을 역임하였다. 이천 연합의진이 광주의병과 연합하여 수도 서울의 군사적 요충지인 남한산성을 점거하고 서울 진공을 계획하였지만 일본군대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후 구연영은 고향으로 돌아와 기독교에 투신하여 신앙활동과 구국투쟁을 병행하였다. 그러다가 일진회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장자 구정서와 함께 체포되었다.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1907년 8월 24일 44세의 나이로 아들 정서와 함께 총탄에 맞아 순교했다. 구연영은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으며, 아들 정서에게는 1991년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구연영의 애국 애족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순국 장소인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에 있는 공원에 기념비를 세웠다.
민족정기 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95년
주제 : 기타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의사 열사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투쟁, 농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대구 민족정기탑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5월 21일 이 탑을 세웠다.
민긍호의병장 기념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8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강원도 원주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민긍호(閔肯鎬, 미상~1908)는 한말 여흥민씨의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원주진위대 특무정교를 지냈다.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령이 공포되자 8월 5일 원주진위대의 장교와 병사들을 소집하여 무기를 나누어주고 창의의 깃발을 세웠다. 김덕제 등과 함께 1천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원주읍을 장악한 다음, 일본군 정찰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격퇴시켰다. 8월 8일 이후에는 제천·충주·죽산·장호원·여주·홍천 등지에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약 7개월간 여주읍 습격 점령전투를 비롯하여 72회 이상의 전투를 치러내며 일본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의병장으로 떠올랐다. 민긍호의병장이 거느린 의병부대는 단위부대로서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투력이 강으며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908년 2월 29일 궐덕리 마을을 포위한 일본군 충주수비대와 한국순사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으나, 의병 20여 명이 전사하고, 그는 사로잡혀 강림으로 호송되었다. 그날 밤 부하 60여 명이 강림을 습격해 탈환하려 하자 일제는 이를 두려워하여 29일 오후 11시경 민긍호를 사살하였다. 2000년 10월 민긍호를 기리고자 원주 시민체육공원내 치악의 종 앞 동산에 기념상을 세웠다.
밀양 6.25및 베트남 참전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밀양시 교동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유공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밀양시는 호국용사의 드높은 나라사랑정신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1년 7월 14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밀양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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