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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무공수훈자 공적비(영동군)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북도 영동군
관할지청 : 충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동군 오탑리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이 고장 출신 무공수훈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회 영동군 지부는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2년 8월 31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영동 군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무공수훈자 전공비(진천군)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관할지청 : 충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진천군 출신 무공수훈자들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 군민들의 안보사상을 함양하기 위하여 1995년 5월 13일 건립하였다. 사선을 넘나들며 조국과 민족을 지킨 무공수훈자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무공수훈자 전공비 (마산)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마산시 무공수훈자회는 1999년 10월 15일 마산시 합포구 석전동 석전삼거리 소공원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토수호를 위해 그리고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마산시 출신 무공수훈자 214명의 공훈을 선양하고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자 이 전공비를 건립하였고, 전공비 뒷면에 214명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무공수훈자 공적비 (진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2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진해시 무공수훈자회는 2002년 10월 30일 경남 진해시 장천동 대발령 제1쉼터에 6·25전쟁 및 자유수호 전쟁에서 나라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용전분투한 진해지역 무공·보국수훈자 840명의 명예와 애국심을 선양하고 이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 전공비(청도군)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무공수훈자 청도군지회는 2000년 5월 30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 청화로 70 (군민회관 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여 공을 세운 청도군 출신 무공수훈자 76명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 군민에게 숭고한 호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이 전공비를 건립하였고, 전공비에 무공수훈자 76명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2023년 10월20일 군민회관 철거로 인해 충혼탑 부지로 이전하였다
무공수훈자 호국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무공수훈자회 포천시지회는 2003년 6월 6일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하성북리 635-4에 포천시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수상한 무공수훈자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게 호국정신을 배양케 하고자 이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무명용사 충혼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인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인제군 한계리에 6·25전쟁 기간에 인제군 노전평전투에서 산화한 726위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무명용사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인제군과 제12보병사단은 이 고장에서 전사한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금을 모아 1967년 9월 29일 충혼비를 세웠다 1951년 8월 중순 국군 제8사단이 투입된 노전평 지구에서 적의 주저항선인 1,031고지와 965고지를 두고 적의 저항도 격렬하여 수시로 고지의 주인이 바뀌기를 반복하면서 쌍방은 많은 희생자를 냈다. 2014년 10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이곳에서 전사한 강영만 하사의 유해를 발굴해 유가족에게 유품을 전달했다. 세월의 흐르면서 충혼비가 크게 퇴락하자, 인제군에서 1999년 9월 정비하였다. 인제군과 군 부대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무공수훈자 공적비(청주시)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관할지청 : 충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청주시 무공수훈자회는 2000년 8월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1459(발산공원 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여 공을 세운 무공수훈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 공적비를 건립하였고 무공수훈자 509명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이후 474명의 무공수훈자회 회원 누락자 및 추가자 발생으로 인해 2010년 4월 474명의 명각비를 추가로 건립하였다.
무어장군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여주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단현리에 전쟁 영웅이었던 미 육군 제9사단장 브라이언트 무어(Bryant E. Moore)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1951년 10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1894년 6월 6일 미국 메인 주에서 태어난 무어 장군은 8군사령관 리지웨이와 미국 육사 동기였다. 리지웨이가 8군사령관에 부임하면서 추천한 네 명의 군단장 후보중 가장 유능한 인물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럽에서 연대장, 사단장을 지냈고, 전후엔 미국 국방부 공보처장, 육사교장을 거쳤다. 6·25 전쟁 당시 1951년 1월 31일 부임하여 3주만인 1951년 2월 24일 남한강 도하작전을 지휘하다 고압 전기선에 헬리콥터가 충돌하여 강바닥에 추락 전사했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무성서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북도 정읍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무성서원은 원료 고려시대에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泰山祠)였다. 조선조에 들어서서 성종 14년(1483) 정극인의 향학당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고, 숙종 22년(1696)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서원으로 사액되었다. 1906년(병오년) 3월 고석진이 의병을 일으킬 것을 건의하자 최익현은 태인의 임병찬에게 편지를 보내 뜻을 같이할 것을 권하였다. 몇 차례의 서신 왕래를 통해 임병찬의 뜻을 확인한 최익현은 당시 거주하고 있던 충청남도 청양을 떠나 태인으로 향하였다. 임병찬을 제자로 받아들인 최익현은 회문산 북록의 상종성에 약 2개월간 머물며 거의를 준비하였다. 창의소를 지어 고종에게 올린 최익현은 임실·순창·담양 등지로 사람을 보내 동지를 규합하였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강회를 마친 뒤 그 자리에서 창의를 발의하니 따르는 자가 80여 명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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