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선택
서울
경기
충북
충남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인천
대전
광주
대구
울산
부산
세종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닫기
닫기
현충시설 소개
현충시설 소개
국내 현충시설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국외 참전시설
국외 참전시설 둘러보기
현충시설 함께하기
나라 사랑 여행 코스
현충시설 활용 우수사례
국민 의견
OPEN API
전체 현충시설
홈 > 국내 현충시설 > 전체 현충시설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MAP
HOME
TOP
BOTTOM
시설 전체
탑
공원
기타
동상
비석
사당
생가
장소
기념관
사적지
조형물
주제 전체
기타
사적지
문화운동
사회운동
월남전쟁
월남참전
의병운동
의열투쟁
학생운동
해외운동
민족주의운동
애국계몽운동
한말구국운동
3·1운동
6·25전쟁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전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지자체 전체
VR 영상
유
무
안내판
유
무
제목
내용
검색 결과
총 2360건
Excel
전체 개수 : 2360
매천 황현 선생 시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55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남도 구례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말의 문장가,시인,황희 정승의 후손으로 역사비평서인 『매천야록』을 저술하였고,1901년 경술국치로 국권이 침탈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한 한학자 매천 황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한 말의 문장가요 시인이며 예리한 시각으로 시대와 역사를 비판한 우국지사 매천 황현은 1855년 봉강면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지만 가계가 가난하고 몰락하여 농민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매천은 어릴 때부터 체격은 작고 약했지만 총명하였고 특히 시문에 뛰어나 당시 호남의 대유학자 기정진도 그의 재능을 높이 칭찬하였다. 29세 때인 1883년(고종20년) 과거에 응시하여 초시초장에서 장원에 뽑혔으나 시험관이 그가 몰락한 가문 출신임을 알고 차석으로 떨어뜨렸다. 이후 그는 벼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집필에 열중하여 그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깊이 배어있는 역사비평서인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시문집인 '매천집','매천속집'과 '동비기략'을 저술하였다. 시비는 1901년 경술국치로 국권이 침탈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현충시설물이다. 그의 절명시는 다음과 같다. 새 짐승이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세상이 이미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도 하구나.
매천 황현 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55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남도 광양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말의 문장가요 시인이며 예리한 시각으로 시대와 역사를 비판한 우국지사 매천 황현은 1855년 봉강면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지만 가계가 가난하고 몰락하여 농민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매천은 어릴 때부터 체격은 작고 약했지만 총명하였고 특히 시문에 뛰어나 당시 호남의 대유학자 기정진도 그의 재능을 높이 칭찬하였다. 29세 때인 1883년(고종20년) 과거에 응시하여 초시초장에서 장원에 뽑혔으나 시험관이 그가 몰락한 가문 출신임을 알고 차석으로 떨어뜨렸다. 이후 그는 벼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집필에 열중하여 그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깊이 배어있는 역사비평서인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시문집인 '매천집', '매천속집'과 '동비기략'을 저술하였다. 매천 황현의 동상은 광양시 광양읍 우산리 우산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이 동상은 광양의 대표적인 인물인 매천 황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4년에 건립한 것으로 동상과 함께 그의 연보, 절명시, 건립취지문이 쓰여 있다.
매산학교(신사참배 거부운동지)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37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한 매산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매포지전투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북도 단양군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제1대대장 박치옥 소령은 정찰대로부터 북한군 제12사단의 지휘소가 매포초등학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동·북서쪽에 있는 267고지·265고지·257고지에 적의 경계병력이 분산 배치되어 지휘소 경계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고, 5시를 기해 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제18포병대대의 교란사격을 지원받는 가운데, 제2중대의 특공대가 267고지의 북한군 매복조 1개분대를 섬멸하자 대대주력은 267고지로 진출하고, 제2중대가 개활지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또한 제1중대가 웃말의 329고지 동쪽 능선으로 신속하게 기동하여 급습하자, 북한군은 분산되기 시작하였다. 이 작전으로 국군 제10연대 제1대대는 적 100여 명 살상, 3대의 장갑차와 10문의 소구경포, 3대의 트럭 파괴 등의 전과를 올렸다.
매천 황현선생 유적지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855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남도 광양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황현은 11세때 한말 대석학인 왕석보의 문하생이 되어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24세 때 상경하여 강위를 통하여 이건창, 김택영과 교유하게 되었으며 32세 때에 구례 간전면 만수동에 구안실을 짓고 부모님을 모신 가운데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에 몰두하였으며 56세 되던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민족자존의 울분에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구례 광의면 월곡에서 순절하였다. 황현의 우국충정과 역사· 문화 업적을 기리고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려 애국· 애향정신을 북돋우며, 그 정신을 계승할 목적으로 광양시에서 2001년에 생가를 복원하였다.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50.6.29. 맥아더 사령관이 영등포공원 일대를 직접 시찰하여 국군의 사기를 고양시키고 북한군의 공세에 대한 반격 작전을 구상했던 곳으로 이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맥아더 장군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인천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인천시 중구 중앙동 자유공원 내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맥아더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시에서 1957년 9월 15일 동상을 만들어 세웠다.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경남북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국토가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 실로 나라 존망이 위태로운 때 9월 15일 맥아더(Douglas McArthur) 사령관이 지휘한 UN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우리 조국을 구원한 맥아더 장군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우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인천상륙작전의 전장이 내려다 보이는 자유공원에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면암최익현선생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33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충청남도 청양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최익현은 1833년에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여 14세 때부터 이항로 문하에서 수학하고 1855년 명경과에 급제하여 1868년 9월 사헌부장령으로 있을 때 당대의 권력가인 대원군의 주요 정책인 경복궁 중건의 중지, 취렴정책의 혁파, 당백전의 폐지, 사대문 문세의 폐지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관직이 삭탈되었다. 1873년 승정원동부승지로 임명되자 사직소를 올려 대원군의 정치를 정면으로 공격해 대원군 일파의 비난을 받았으나 고종은 그의 상소를 받아들이고 호조참판에 임명했다. 그해 11월 다시 상소하여 앞서의 상소내용을 부연설명하면서 만동묘의 철폐를 비롯한 대원군의 실정을 통박하고, 하야를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10년간 집권해온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었다. 1876년 1월 일본과의 통상조약 체결이 추진되자 도끼를 지니고 궁궐 앞에 엎드려 일본과의 강화는 일본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화의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1905년 10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29일 ‘청토오적소’ 를 올려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하고 망국조약에 참여한 외부대신 이완용, 박제순 등 을사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1906년 1월 충청남도 노성 궐리사에서 수백 명의 유림을 모아 시국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일치단결하여 국권회복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의병을 일으켜 900명에 이르렀으나 전주관찰사 한진창이 이끄는 전라북도지방 진위대의 포위 공격을 받아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일본군사령부로 넘겨져 끈질긴 회유와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쓰시마 섬[대마도]에 유배되어 엄원위수영에 감금되었는데 그곳에서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동상은 지난 1973년 12월 선생의 충의를 기리고 애국사상을 기리기 위해 청양군민의 십시일반 모금해 현 위치에 건립됐으나 이 동상은 지난달 선생의 위패를 모신 목면 송암리 ‘모덕사’로 옮기고, 기존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 동상을 제작해 다시 세웠다. 새 동상은 높이 7.2m의 청동상으로 동상의 좌대는 칠갑산을 상징하는 7각형으로 만들어졌다.
면암 최익현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33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최익현은 1833년에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여 14세 때부터 이항로 문하에서 수학하고 1855년 명경과에 급제하여 1868년 9월 사헌부장령으로 있을 때 당대의 권력가인 대원군의 주요 정책인 경복궁 중건의 중지, 취렴정책의 혁파, 당백전의 폐지, 사대문 문세의 폐지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관직이 삭탈되었다. 1873년 승정원동부승지로 임명되자 사직소를 올려 대원군의 정치를 정면으로 공격해 대원군 일파의 비난을 받았으나 고종은 그의 상소를 받아들이고 호조참판에 임명했다. 그해 11월 다시 상소하여 앞서의 상소내용을 부연설명하면서 만동묘의 철폐를 비롯한 대원군의 실정을 통박하고, 하야를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10년간 집권해온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었다. 1876년 1월 일본과의 통상조약 체결이 추진되자 도끼를 지니고 궁궐 앞에 엎드려 일본과의 강화는 일본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화의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1905년 10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29일 ‘청토오적소’ 를 올려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하고 망국조약에 참여한 외부대신 이완용, 박제순 등 을사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1906년 1월 충청남도 노성 궐리사에서 수백 명의 유림을 모아 시국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일치단결하여 국권회복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의병을 일으켜 900명에 이르렀으나 전주관찰사 한진창이 이끄는 전라북도지방 진위대의 포위 공격을 받아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일본군사령부로 넘겨져 끈질긴 회유와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쓰시마 섬[대마도]에 유배되어 엄원위수영에 감금되었는데 그곳에서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면우 곽종석선생 유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46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89년 12월 문화체육부가 면우 곽종석 선생(1846~1919)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산124 (면우 선생 다전 기적비 뒷편 길 50m)에 유적비를 건립하였다. 1919년 3월 무렵 한국 유림들이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진정한 의사를 직접 파리강화회의에 전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곽종석은 파리장서라고 하는 2, 674자의 장문을 지어 김복한 등과 같이 137명의 유림대표로서 이에 서명하고, 김창숙으로 하여금 상해로 보내어 파리에 한국대표로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이해 4월 12일 경북 성주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된 유림 송회근에 의하여 파리장서 사실이 탄로나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받았고 그해 7월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곧 병사하였다.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페이지 이동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