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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독립유공자 윤형숙 열사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이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 및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협의하여 준비한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당시 수피아여학교 학생이었던 윤형숙도 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대열에 참가하여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저지하는 일본 헌병의 칼에 왼쪽 팔을 잃고 오른 쪽 눈을 다쳤으나 시위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월의 옥고를 치렀다. 여수시는 이를 기념하여 2013년 9월 28일 이 비를 세웠다.
독립유공자 김재홍선생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라남도 영암(靈岩) 사람이다. 1919년 4월 10일의 영암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면서기로 재직하면서, 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참가하였으며, 동료직원인 최민섭(崔旻燮)과 함께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 6백여매, 태극기 50여매, 독립신문 5백여매, 독립가(獨立歌) 1백여매를 비밀리에 등사하였다. 영암 장날인 4월 10일 수많은 시위군중이 회사정(會社亭) 광장에 모이자, 그는 미리 만든 태극기 등의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제의 의해 체포되었다. 결국 이해 7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38년
주제 : 기타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관할지청 : 서울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숭실대학교는 1897년 개교 이래 근대 문명 교육을 선도하며 민족의 자주적 근대화와 독립에 앞장섰으며 을사늑약 반대에 힘쓰고 신민회 및 조선국민회 활동 등을 전개하면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독립전쟁에 대비하여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과 무관 양성에 주력하였다. 105인 사건, 조선국민회, 광복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1920년대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광주학생운동 등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에 항거한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들은 독립만세운동에서 가장 많이 배출됐다.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원은 현재까지 114명으로 파악되었으며 1929년 12월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광주학생운동(3·1운동 이후 최대 민족 항쟁)에도 숭실인이 있었다. 1930년 1월 전개된 평양학생만세운동으로 검거된 학생 173명 중 숭실 출신 학생은 107명에 달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여 자진 폐교한 유일한 학교이며,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헌신한 숭실은 정부로 부터 건국훈장을 수여 받은 독립유공자 88인을 기념하기 위해 현충시설 ‘독립의 반석’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돈헌 임병찬 의사 순지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51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임병찬은 전라북도 옥구 출신이다. 한학을 배웠으며 39살에 낙안군수 겸 순천진관병마 동첨절제사를 역임하였다. 1906년 2월에 의병장 최익현과 더불어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태인, 정읍, 순창, 곡성 등 지역을 습격하였다. 그 해 6월에 순창에서 최익현과 함께 적에 의해 체포되어 일본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1907년 1월에 귀국하였다. 1912년 9월 고종황제가 내린 밀조에 따라 독립의군부를 조직하고 합방의 부당성을 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국민에게 국권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일제를 구축하려는 항일의병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 해 5월 일본 경찰에 의해 그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임병찬 이하 관련자들이 대거 피체되고 거문도로 유배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6년 5월 23일(음력)에 유배지에서 사망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동구 6·25참전유공자 명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동구지역 출신 6.25참전유공자 920명의 이름을 명각한 비로 동구 출신 6.25참전유공자의 명예를 선양하고 지역 주민의 호국의식 함양을 위해 건립되었다.
동암 서상일선생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7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서상일은 대구 사람으로 1909년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비밀항일단체인 신민회의 이념을 계승한 대동청년단을 조직, 독립운동을 했다. 1910년 '9인결사대'를 조직했으며, 1913년 대구에서 박상진 등과 함께 광복단을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집했다.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에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지역의 만세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20년 3월 만주로부터 무기를 반입하여 일제 관공서를 습격할 계획을 준비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투옥되었다. 1921년 8월 미국에서 열리는 태평양회의에 동지들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보내고, 이 청원서에 대표로 서명했다. 1924년 〈농림〉·〈민중운동〉이라는 잡지를 발행했으며, 연정회 조직 결성에 대구지역 대표로 참가했다. 신간회 해소 이후 〈합법운동과 비합법운동에 관한 사견〉 등 정치평론을 발표하면서 합법적 정치운동에 주력하다가 만주로 망명했다.
동래고등학교 6.25 참전 호국영웅 명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동래고등학교 출신으로 6.25전쟁에 군인, 학도병으로 참전해 국가수호를 위해 헌신한 289명의 이름을 각인하여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동의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5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북도 정읍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본관은 평택(平澤)으로 전라북도 옥구(沃溝) 출신이다. 임용래(林榕來)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학(漢學)을 배웠으며 39살에 낙안군수(樂安郡守) 겸 순천진관병마 동첨절제사(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1906년 2월에 의병장(義兵將) 최익현(崔益鉉)과 더불어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켜 초모(招募), 군량(軍糧) 및 병사훈련 등의 책임을 맡아 홍주(洪州) 의병장 민종식(閔宗植)과 서로 연락을 맺으면서 태인, 정읍(井邑), 순창(淳昌), 곡성(谷城) 등 지역을 습격하여 관곡(官 )을 취해 군량으로 삼고 진용(陣容)을 정비하였다. 그 해 6월에 순창에서 최익현과 함께 적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어 일본 헌병에 의해 서울로 압송된 후 감금(監禁)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의 대마도(對馬島)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1907년 1월에 귀국하였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에는 은거하면서 재차 거의할 것을 도모하던 중 1912년 9월 고종황제가 내린 밀조(密詔)에 따라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널리 격문을 발송하고 동지를 초모하는 한편 그 조직을 확대시켜 12월에는 전라남북도 독립의군부순무대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1914년 2월 서울로 올라와 이명상(李明翔)·이인순(李寅淳) 등과 상의하여 독립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시켜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의 편제로 재조직하였다. 임병찬은 그 총사령이 되어 일제의 내각총리대신 총독 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 일제합방의 부당성을 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도 일제의 통치에 한국민이 불복(不服)하고 있음을 표명하는 한편 국민대중에게 국권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일시에 일제를 구축하려는 항일의병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 해 5월 일본 경찰에 의해 그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임병찬 이하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당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체포된 후에 옥중에서 계획이 실패됨을 분개하고 3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였다. 그 뒤 6월 13일 거문도(巨文島)로 유배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6년 5월 23일(음력)에 유배지에서 사망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동두천시 현충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동두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동두천시는 1978년 6월 6일 동두천시 생연동 산47-1에 조국의 안녕과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현충탑을 건립하였다. 현충탑의 휘호는 진만헌(당시 군수)의 친필이며 탑의 모형과 설계는 이일녕 화백이 맡았다. 동판에 있는 비문 내용은 나라에 몸 바친 호국들에게 국민의 정성으로 위훈을 비니 겨레의 빛이 되어 그 뜻이 영원하라는 내용이다.
동티모르 순직 장병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3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광주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2002년 10월 동티모르에 파병된 고(故) 민병조.박진규 중령과 백종훈.김정중.최 희 병장은 이듬해 3월 지역재건 장비를 보급하기 위해 에카트 강을 건너다 폭우로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운전병이던 김 병장의 유해는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육군은 사고 당시 영결식에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각각 1계급씩 추서했으며 특수전교육단 영내에 추모비를 건립해 매년 3월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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