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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지사 남계 강영순선생의 사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2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고성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강영순은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의 진주군 정촌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8일 그는 5천여 명의 대대적인 정촌면 시위군중과 함께 진주읍내로 시위 행진하였다. 도중에 사천의 일본군 헌병대와 진주의 일본군 수비대의 경계선을 돌파하고 칠암리에 도착했을 때,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과수원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 군경과 충돌하여 격투가 벌어졌다. 그는 한손에는 대형 태극기를 들고 한손으로 일본 헌병의 칼을 빼앗아 남강에 던지며 선두에서 시위군중을 지휘하였다. 진주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시위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이를 성원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이 던진 포승줄에 목이 감긴 그는 결국 체포되었으며, 시위군중의 필사적인 구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주경찰서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재판정으로 호송되는 도중에 포승을 절단하고 일본 경찰 2명을 발로 차 쓰러뜨린 뒤 피신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수년간 유랑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운동가 추모비(독립유공자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5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관할지청 : 충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류자명(柳子明, 1894~미상)은 대소원면 영평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충주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준비하다가 일경에게 탐지되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부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고, 1924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4월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하였으며, 1942년 임시의정원 의원, 1943년 3월 임시정부 학무차장에 임명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서정기(徐廷夔, 1898~1950)는 대소원면 대소리 출신으로 1925년 1월 서울에서 항일비밀결사인 흑기연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출옥후 1929년 2월 문예운동사라는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르고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이일신(李一信, 1909~1988)은 대소원면 매현리 출신으로 1929년 12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교 만세시위를 주동하였고, 조선학생전위동맹을 조직하여 항일전단을 제작 배포하다가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에 유학 중 1938년 2월 재동경조선인유학생연구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발전협의회에서는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5년 1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독립유공자 김근도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0년
주제 : 사회운동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김근도는 가덕도에서 태어나 1918년 일본 대판으로 건너가 법랑직공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제의 한국통치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민족차별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1936년 동향인 이수룡·이수강·김성규 등을 규합하여 재대판가덕인친목회를 조직한 그는 이후 약 두 달간에 걸쳐 회합을 갖고 일제의 민족차별정책과 한국 강점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한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봉기하여 국토를 일본으로부터 탈환하고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회원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 후 1939년 대판 주재 가덕인 청년을 결집하여 새로이 가덕인청년부회를 결성하고 1940년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여 민족정신 함양을 통해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격려하다가 피체되었다. 1942년 9월 30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그 해 12월 22일부터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 10월 8일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직산 김창열(원술) 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19년 거국적인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약관 23세의 몸으로 향리의 동지들을 규합하고 성주시장 만세 사건을 주도했다. 수많은 태극기를 손수 만들어 장짐처럼 가장하여 거사일인 4.2 성주시장에 운반, 군중들에게 나눠주어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독립유공 애국지사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0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전북 남원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임시정부, 노동운동, 국내항일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분들은 다음과 같다. 박권영(朴權永, 1898~1967), 박기영(朴琪永, 1893~1938), 박재홍(朴在洪, 1845~1910), 양문순(梁文淳, 1862~1927), 양한규(梁漢奎, 1844~1907), 이두석(李斗碩, 1921~1947), 이태현(李太鉉, 1907~1942), 전규문(田圭文, 1881~미상), 정한익(丁漢翼, 1890~1977), 황찬서(黃贊西, 1873~1919) 남원 시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70년 3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독립유공자 권오돈, 권준희 생가(수곡고택)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926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수곡고택은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활동을 한 독립유공자 권준희 선생과 그의 손자로서 학생 만세운동을 추진하다 옥고를 치른 권오돈 선생의 생가이다. 권준희는 1915년 7월 경북 대구에서 박상진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혐의로 1918년 체포되었다. 권오돈 1926년 연희전문학교에 재학중 6·10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여 연희전문학교 학생들과 격문을 뿌리면서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정학처분을 받았으며 1928년 신흥청년동맹원으로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 중 옥사하였다.
독립유공자 정세권 생가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935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경상남도 고성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26년 서울에서 한옥 건축업인 건양사를 건립하여 북촌한옥마을 조성에 기여하였으며, 조선어학회가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을 하면서 독립된 사무실이 없어 고난에 처하자, 1935년 서울 화동에 있는 2층 건물과 부속대지를 희사하여 조선어학회 국어운동과 사전편찬사업을 적극 지원하였다. 정세권 애국지사의 생가는 1940년 사재를 들여 건립하여 낙향하여 생활하던 곳이었다.
독립유공자 이세영 유허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충청남도 청양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독립유공자 주재년 열사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43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주재년 열사 기념관은 2012년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 생가터에 설립되었다. 기념관은 본동 1동과 대문간 1동, 비각 1동 등으로 건축됐다. 주재년은 1943년, 15살의 나이로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목화밭 담장 밑 큰 돌 4개에 '일본과 조선은 다른 나라, 일본은 패망한다, 조선 만세, 조선의 빛'이라고 새긴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월경 징역 8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4개월 동안 복역했다. 그러나 그는 복역 도중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석방 후 한 달여 만에 순국했다. 정부는 2006년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고,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독립지사 좌해 허재기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고성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년 3월 20일 국천사장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공약삼장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회화면으로 시위행진하여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대국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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