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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독립지사 공재규·공민호선생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합천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추모비는 1919년 합천군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했던 공재규 선생과 공민호 선생을 기리기 위한 시설이다. 공재규는 경상남도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3일 상백면(上栢面)과 삼가(三嘉)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공재규는 3월 18일의 삼가 장날을 이용하여 정연표(鄭演彪) 등과 함께 4백여명의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무력행사로 일단 해산하고 3월 23일 상백면에서 다시 거사하기로 약속하였다. 3월 23일, 공재규는 칠순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원규(鄭元圭)·진택현(陳宅賢)·오영근(吳永根)·정치규(鄭致圭) 등과 함께 4천여명의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상백면사무소 일대를 시위행진하고 면사무소를 불태우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천여명의 시위군중은 10여리 떨어진 삼가 장터로 시위행진하였다. 도중에 일제의 연락망을 두절하기 위하여 전주 2개를 쓰러뜨리고 삼가 장터에 도착하였는데, 이날 삼가 장터에는 가회(佳會)·삼가·상백면으로부터 시위군중이 모여들어 그 수가 1만 3천명이나 되었다. 오후 3시경, 정금당(正衿堂) 앞에서 김전의(金典醫, 성명미상)·정방철(鄭邦哲)·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이 등단하여 조국독립의 필연성과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는 강연회가 열렸다. 그러나 마지막 연사인 임종봉이 등단하여 연설을 할 무렵, 강연장을 포위하고 있던 일본 헌병이 임종봉에게 총격을 가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군중이 그들에게 달려들자, 일본 헌병은 경찰주재소로 도망하였다. 오후 5시 30분경, 시위군중은 몽둥이와 낫을 들고 경찰주재소로 달려갔다. 이때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군경의 무차별 사격으로,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던 공재규는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공민호는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합천군 삼가읍(三嘉邑) 장터에서 정방직(鄭邦直)·정각규(鄭恪圭)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여, 장터에 모인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4월 2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독립지사 우초 백성흠선생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8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백성흠은 1888년 10월 17일 경북 성주 대가면 탕실에서 태어나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자 성주장터에서 만세시위를 계획, 독립만세를 주도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동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1심 징역 1년6월, 항소심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옥중 고문 후유증 등으로 향년 34세로 1922년 7월 29일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독립항쟁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95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용인 지역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항일의병 40명, 3·1독립운동 주동인사 77명, 애국독립지사 36명 등 153명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어 있고, 1919년 3·1독립운동에는 이 지역에서 1만 3, 200여명이 참여했으며, 그 가운데 일본 경찰과 헌병대의 폭압으로 사망 35명, 실종 139명, 상해 502명, 옥고 65명 등 741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용인시청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5월 23일 이 탑을 세웠다.
독립유공자 위령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0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곡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전남 곡성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들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분들은 다음과 같다. 김성언(金成言,1880~미상), 김영학(金永鶴,1887~1939), 김용표(金容杓,1899~1967), 김재룡(金在龍,1907~1937), 노인선(盧仁先,1877~1909), 노임수(盧琳壽,1876~1911), 신문선(辛文善,1906~1937), 신유선(申有善,1894~1982), 신정백(申正栢,1877~1909), 양원모(梁遠謨,1858~1942), 유건영(柳健永,1883~1940), 유인수(柳寅秀,1860~1927), 유해용(柳海瑢,1884~1938), 윤정구(尹正九,1882~1953), 이종협(李鍾俠,미상~1907), 이초립(李草笠,미상~1908), 장기문(張基文,1924~미상), 정재건(鄭在健,1843~1910), 조영선(趙泳善,1879~1932), 조옥희(曺玉姬,1901~1971), 조우식(趙愚植,1870~1937), 한방섭(韓芳燮,1890~1958) 독립유공자유족회 곡성군지회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2005년 11월 17일 이 탑을 세웠다.
독립투사 조문기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45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화성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화성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나 매송보통학교를 다닌 조문기 지사(1926~2008)는 1944년 18세 일본에 건너가 일본강관주식회사에서 '조선인 멸시 규탄 파업'을 주도하였다. 귀국하여 유만수, 강윤국 등과 '대한 애국청년당'을 결성하였고, 박춘금 등 친일파 수괴와 총독부 고관들이 총집결하여 경성 부민관에서 개최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 행사장을 폭파하여 일제강점기 마지막까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굳건히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과시하였다. 해방 후, 민족통일과 민족사 정립의 길에 평생을 바친 선생은 2008년 82세로 별세하고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독도 순직경찰위령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4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독도경비대 근무자 중 추락하여 사망한 6인의 위령비
독립만세 100주년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사천시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년 3월 21일 사천공립보통학교(사천초등학교) 졸업식 날 재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친선 축구 경기를 하면서 첫 골이 터지자 이윤조학생 등이 주동하여 가슴에 품고 있던 태극기를 일제히 꺼내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일본 헌병대의 총칼앞에 저항하며 교문을 박차고 나가 읍민과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한 전국 최초의 재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나게 됨으로써 민족정신을 드높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독립지사 면산 김선오공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선오는 경상남도 김해 사람으로, 1919년 4월 12일의 장유면 무계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선언식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김종훤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4월 12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장터에 모여들어 시위 군중은 3천여 명이나 되었다. 이날 그도 장터에서 시위대열의 일원으로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일본군경이 출동하여 무력을 행사하자, 시위군중은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본 헌병은 무차별 사격을 하였으며, 그는 적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관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996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독립관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옛 독립협회 사무실로 쓰던 독립관을 고증에 따라 복원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원래 중국 사신 방문시 접대를 하던 공간인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모화관 건물을 청·일 전쟁 이후 독립협회에서 사용하던 건물이다. 1894년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수한 후,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민권·자강 사상을 고취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독립문과 함께 독립 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독립관은 지상1층 한식 목조건물로서 정면 6칸 측면 4칸 7량 팔작지붕 구조였으며, 원래 위치는 동남쪽으로 약 350m 지점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조성사업계획에 의거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지상층은 당초대로 한식 목조건물로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사용하고,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 보관을 위해 사용하고 있으며 1996년 서울시에서 건립하였다.
독립투사 호암 이준용·수암 한용섭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3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준용은 강원도 춘천 사람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교도로 동학농민군에 참여하여 공주일대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부상을 당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 이후 의병운동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집에 대장소를 설치하게 하고, 전답을 팔아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지용기 의병을 적극 지원하였다. 1919년 천도교 춘천교구장으로 있으면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윤도순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비밀리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3월 28일 춘천읍내 시장에서 박순교·허기준·허현 등과 함께 수십 명의 시위군중들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시위 현장에서 헌병경찰에게 피체되어 고초를 겪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용섭은 홍천읍 등 여러 곳에서 독립운동을 선도했으며 그 후 서면 방동리에 정착하여 항일사상을 고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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