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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사천 호국무공수훈자 전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사천시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무공수훈자회 사천시지회는 2004년 3월 18일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402(선진리성 입구)에 사천시 출신 무공수훈자들의 충성심을 높이 받들고 이들의 공훈이 영원토록 보전되어 후세에게 나라사랑 호국정신을 일깨우고자 이 전공비를 건립하였다. 전공비 정면에 새긴 비문에는 사천시 출신 최송량 시인이 지은 “무공 수훈자 영원한 맹세”가 새겨지고 하단 탑대 동쪽에 96명의 무공수훈자회 사천시지회 회원들의 성명, 계급, 훈격 등이 새겨져 있다.
사천6.25전쟁 월남전쟁 참전유공자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0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경상남도 사천시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사천 6·25전쟁·월남전쟁 참전유공자기념탑’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해 조국을 수호하고 자유정신을 사수한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2012년 9월 20일 사천시가 경남 사천시 용현면 통양리 254(선진공원 내)에 건립했으며 6·25참전유공자 772명, 베트남참전유공자 485명이 명각되어 있다.
산남의사 남공 유허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0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남복수는 경상북도 청송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늑결되자 고종황제는 측근 정환직에게 항일의병운동의 재개를 종용하였다. 정환직은 장남 정용기에게 고향 영천으로 내려가 의병을 조직할 것을 명하고 중앙에서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정용기는 이한구·손영각 등과 의논하여 영남과 관동 일대의 지사들을 규합하여 이른바 산남의진의 창단을 보게 되었다. 이에 남복수는 산남의진에 입대하여 의병운동의 효과적 전개를 위하여 군자금과 무기를 모집하여 조달하는 등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입암 영천 등지의 전투에서 적과 격전을 전개하던 중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산남의진은 청송지역의 의병전쟁을 선도한 부대로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청송을 비롯하여 영천, 영일 일대에서 활동했던 부대이다.
산남의진 전투지-죽장면 입암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07년 8월 하순 산남의진(山南義陣) 대장 정용기(鄭鏞基)는 관동(關東)으로 북상하기 위해 본진 선발대 100여 명을 거느리고 영일군 죽장면(竹場面)에 주둔하였다. 이때 일본군이 청송 방면에서 입암(立巖)으로 들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정용기는 우재룡(禹在龍)·김일언(金一彦)·이세기(李世基) 세 부장을 각기 길목에 매복시키고, 자신의 본대는 9월 1일 새벽에 입암을 기습 공격하여 적을 섬멸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세기 부장이 입암에서 일본군 수명을 발견하고 성급하게 공격하다가 적의 복병에게 집중공격을 받아 패하였다. 이때 정용기는 갑작스런 포성을 듣고 밤중에 입암으로 진군하다가 일본군과 새벽까지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권규섭(權奎燮) 등 수십명의 의병들이 전사하였다. 이로써 산남의진의 지휘부는 무너지고 정용기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이 달려와 남은 의병을 수습하여 인솔하였다.
산남의진 정대장 양세출신 충효동 사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43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구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인 정환직(1843~1907)과 정용기(1862~1907) 부자의 출생지인 영천시 자양면 검단리를 충효동이라 고쳐 부르고, 정씨 부자의 숭고한 사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본보기로 삼고자 1988년 5월 10일 자양면 충효리 626번지에 충효동사적비를 건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고종황제로부터 밀지를 받은 정환직 선생은 큰아들 정용기와 함께 1906년 3월 영천에서 1천여 명의 의병을 모아 산남의진을 일으켰다. 정용기 대장은 9월 1일 영일군 죽장면 입암에 포진한 일본군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역습을 받아 정용기 대장을 비롯하여 의진의 핵심부장과 의병 대다수가 전사하였다. 아들의 순국소식을 들은 선생은 직접 의병장으로 나서 청송의 보현산 일대와 영일의 동대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선생은 서울진공작전의 일환으로 산남의진을 관동지방으로 북상시키던 중 1907년 11월 청하면에서 일본군에게 피체되어 총살당하였다.
산청군 참전 기념공원
시설 : 공원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산청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산청군 외송리 참전기념공원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유공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참전기념공원’을 건립하였다. 산청군은 이곳 출신으로 무공수훈자를 비롯한 참전유공자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2007년 6월 15일 기념공원을 준공하였다. 6·25전쟁에 산청 군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산청군에서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산남의병 제4차 결성지(거동사)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8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작은 보현산에 자리한 거동사(巨洞寺)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통사찰로 조선시대까지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이곳이 산남의병의 제4차 결성지여서 2013년 2월 국가보훈처로부터 국립현충시설로 지정받았다. 산남의진은 1907년 제2대 대장 정환직(1843~1907)이 순국한 뒤, 최세윤(1867~1916)을 제3대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최세윤은 1908년 2월 산남의진의 본대가 머물고 있는 보현산 거동사에 도착하였고 한 달 뒤에 대장에 추대되었다. 최세윤 대장은 산남의진이 목표로 삼고 있던 관동지방으로의 북상계획을 중단하고 경상도 일대에서 지구전을 펼칠 계획으로 부장들을 각 지역으로 배치하였다. 지역별 책임자를 선정하고 본부를 남동대산으로 옮긴 최세윤은 경주·울산·흥해·포항 지역은 본부에서 직접 담당하도록 하였다. 산남의진은 도처에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산동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6·25전쟁 때 북한군의 정예부대였던 6사단은 2개 부대로 나눠 15연대를 익산~김제~목포 방향으로, 1연대를 익산~전주구례~순천방향으로 진격시켰다. 전주와 고창을 점령한 그들은 1950년 7월 22일 장성을 점령했다. 당시 광주지역에는 국군 5사단 예하 15연대와 26연대가 재편성하고 있었다. 국군의 무장 수준은 경찰로부터 입수한 99식 소총 10정과 광주병원(3육군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가 휴대했던 M1 소총 몇 정이 전부였으며, 각 부대는 10% 정도만이 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경찰병력 규모는 500명 정도였으나 무장은 M1과 99식 소총뿐이었다. 그나마도 3명 중 1명만이 소총을 휴대한 실정이었다. 북한군과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1950년 7월 23일 광주 북구 동림동에 위치한 옛 산동교에서 북한군과 최초의 교전이 발생했다. 교전 당일 장성에서 퇴각한 26연대는 7월 23일 새벽 4시에 북한군 전차 방어를 위해 산동교를 폭파했다. 26연대 병력과 김홍희 총경이 지휘하는 장성경찰서 대원들로 편성된 군경 혼성부대는 산동교 부근 산등성이에 진지를 편성한 후 적 공격에 대비했다. 7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북한군 6사단 15연대 병력 일부가 전차 2대를 앞세워 산동교에 이르렀다. 군경 혼성부대는 2.36인치 로켓포 등을 발사하며 1시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전투로 인해 북한군의 마산지역 이동은 상당한 시간 동안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산동교는 광주지역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였던 유일한 전적지로, 2011년 11월 10일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이처럼 역사의 아픔과 함께 영산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옛 산동교는 친수(親水) 공원의 일부가 돼 새롭게 건설된 신 산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민들의 건강과 문화의 공간, 6·25 체험행사, 현충시설 탐방 등 나라 사랑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산남의진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사업회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정환직 정용기 부자에 의해 조직된 산남의진에 가담하여 영화 영일 청송 등을 비롯한 강원도 일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강봉학(1890~1914), 박한종(1855~1934), 전응팔(1878~1971), 조상환(1866~1908), 최치환(1875~1944) 애국지사의 숭고한 구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널리 전하기 위해 2006년 11월 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산 78-4에 산남의진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삼일탑(서울고등학교)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서초구
관할지청 : 서울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서울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한 이래 전국 각지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가 이어졌다. 일제 군경은 처음부터 무력으로 탄압하였지만, 애국선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독립선언서에서 선언한 대로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로 온 민족이 대동단결하여 우리나라의 자주독립과 세계 평화를 실현하려 온갖 희생을 감수하였다. 이러한 비폭력 독립운동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며, 국제여론의 지지와 동정을 받아 이것이 일제에게 압력으로 작용하여 조선총독을 경질하고 종래의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정치’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즉각적인 독립은 쟁취하지 못했지만,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민주공화정의 대한민국임시정부까지 출범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독립국가를 세울 기초를 놓았다. 서울고등학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성금으로 1960년 3월 1일 이 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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