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선택
서울
경기
충북
충남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인천
대전
광주
대구
울산
부산
세종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닫기
닫기
현충시설 소개
현충시설 소개
국내 현충시설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국외 참전시설
국외 참전시설 둘러보기
현충시설 함께하기
나라 사랑 여행 코스
현충시설 활용 우수사례
국민 의견
OPEN API
전체 현충시설
홈 > 국내 현충시설 > 전체 현충시설
전체 현충시설
독립운동 현충시설
국가수호 현충시설
MAP
HOME
TOP
BOTTOM
시설 전체
탑
공원
기타
동상
비석
사당
생가
장소
기념관
사적지
조형물
주제 전체
기타
사적지
문화운동
사회운동
월남전쟁
월남참전
의병운동
의열투쟁
학생운동
해외운동
민족주의운동
애국계몽운동
한말구국운동
3·1운동
6·25전쟁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전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지자체 전체
VR 영상
유
무
안내판
유
무
제목
내용
검색 결과
총 2360건
Excel
전체 개수 : 2360
삼천봉지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육군 제15사단은 1983년 10월 1일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GOP입구에 삼천봉지구 전투에서 불멸의 전공을 세운 2사단 장병들의 영웅적인 투혼을 높이 찬양하고 이 전투에서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삼천봉지구 전투는 1951년 8월 9일부터 9월 3일까지 중공군 제20군 예하 4개 사단의 대병력이 적근산 및 대성산을 탈취하고자 인해전술로 수차에 걸친 파상공격을 가해왔으나 우리 제2사단 예하 17연대, 32연대 및 사단 유격대대 용사들이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이 일대를 사수하여 대성산을 확보하였다. 또한 이 전투에서 적 사살 1, 614명, 포획 328명, 3, 477정의 각종 무기를 노획하는 등 대전과를 거두었다.
상원고 6.25참전호국영웅명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희생하신 상원고 출신 참전유공자와 학도병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상록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36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36년 춘천고등학교 학생들은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상록회를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1938년 12월 상록회 조직이 일제 경찰에 노출되면서 학생들이 137명이나 체포되었고 10명이 2년 6월의 실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고, 그 중 백흥기(10회)는 20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 후 1941년 2월 또다시 24명의 학생이 검거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이광훈(15회, 1924~1943)이 인천형무소에서, 고웅주(15회, 1923~1943)군이 김천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상록탑은 춘천고등학교동문회가 1967년 4월 25일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149-1 춘천고등학교 교정에 애국충정으로 산화한 춘천고등보통학교 출신 상록회원들의 얼을 기리고 그 숭고한 뜻을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건립하였다.
상희공원 현석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1년
주제 : 기타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광주시 광산구 도산동에 비행훈련중 불의사고로 사망한 이상희 대위를 기념하기 위해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1992년 1월 21일 이 비를 세웠다. 이상희 대위는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운항과 졸업, 학군사관 17기였다. 이상희 중위(당시 계급)는 당시 제1전투비행단 소속으로, 정식으로 파일럿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다. 1991년 12월 13일 오후 3시경, 광주 상공에서 F-5A 4번기에 탑승하여 훈련비행중이었다. 비행 훈련 중, 3번기와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기체가 제어 불가 상태에 빠져 광주 덕흥마을의 밭에 기체가 추락, 이상희 중위는 순직했다. 파편과 화재로 마을 주민 3명도 중화상 등 부상을 입었다. 이후 기체의 잔해에서 회수된 블랙박스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에 탈출을 결심했으나 민가를 확인하고,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위와 같은 유언을 남기고 장렬히 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향년 23세. 장례는 부대장으로 치뤄졌으며, 사후 공군 대위로 추서되었다.
상동교회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897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상동교회는 1888년 기독교 스크랜튼 선교사가 설립한 감리교 교회이다. 1904년 교회 안에 여학생을 위한 초등학교인 공옥학교와 병행하여 청년학원을 세워 민족지도자를 양성하였으며, 1907년 전덕기 목사가 담임하면서 독립운동의 비밀본부 역할을 하였다. 이 학교의 교감 이회영, 전덕기, 이동녕 등이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국외 독립운동 기지 개척사업을 추진하였으며, 헤이그 밀사파견의 산실이 되었다. 이 교회는 민족운동에 참여한 많은 인재들을 길러 내었는데, 이동녕, 박용만 이승만 등이 이곳에 속하여 있었다.
상주 순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전사한 총경 황을흠, 경위 김용환 경찰관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상주시 국채보상운동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등에 의하여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침탈하기 위하여 벌인 1,300만원의 국채를 갚기 위한 국권수호운동으로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발의된 국권회복운동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상주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상주시 외서면 이천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해 3월 3일 김재익, 박정분을 발기인으로 국채보상상주의무소취지서를 발표하였다. 함창지역의 취지서는 황성신문 3월 24일자에 의하면 채규일, 김규환, 정동락, 박주환 등이 발기인이고 회장은 신관희, 부회장은 권용학, 총무는 김면수이며, 상주지역이 일찍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하게 된 것은 지역출신인 강신규가 대동광문회 국채보상운동의 발기인으로 참여 하였기 때문이다. 상주지역에서는 다양한 계층에서 의연금 모금에 참여 하였다. 사대부들은 향교를 통하여 200원을 출연하였고, 문중의 경우는 외서면 오씨문중, 최씨문중, 이씨문중이 참여를 하였었다. 개인으로는 장교익, 김문화는 각 40원을, 채규일 30원, 강석희, 강신규부자, 박정분, 서상요, 손국인, 김성득, 이장금 등이 20원, 김규환, 김도식, 강윤희 등이 10원을 의연하자 모금운동은 전지역으로 확산되었고, 특히 1원의 기부 참여자가 많았다. 국채보상운동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전개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국권수호 운동이었고 발전한 대한민국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을 오늘날 나눔과 책임의 시대정신과도 연결된다. 그리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애국심을 고향하고자 이 비를 세웠다.
상록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01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심훈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연유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바 있으며, 이후부터 본격적인 문학수업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의 소설들은 대체로 항일정신을 고취시킨 내용으로서 일경의 검열로 중단된 작품이 많다. 선생은 1934년 장편소설 직녀성을 써서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으며, 1935년에는 농촌 계몽소설 상록수를 집필하여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서 당선되었다. 선생이 평소부터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농촌 계몽운동을 피력한 이 소설은 이후 한국 농촌 계몽 소설의 선구적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선생의 상록수 정신을 후세에 전달하고자 상록탑을 건립 하였다.
새장터3·1운동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서천 마산 신장리 장터에서는 3월 29일 송기면의 주도 하에 유성렬·이근호·임학규 등이 시장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송기면은 3월 23일부터 동지를 규합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의 준비 끝에 29일 마산 신장리 장터에서 노형래·하중호·유일동 등과 함께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일제 경찰들은 주동 인사 송기면·유성렬·송여직 등을 체포하여 연행하였다. 그러나 이근호와 나상준 등은 계속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경찰출장소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2, 000여 명에 이르렀고, 군중들은 고시상·양재흥·박재엽 등의 주도로 출장소를 파괴하고, 체포된 인사들을 구출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송기면 등 14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년 3월에서 5년의 옥고를 겪었다. 신장리의 만세운동은 서천지방에서는 가장 큰 3·1만세운동이었다. 건립위원회와 동아일보사는 1987년 3월 1일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360에 새장터 3·1운동에 참여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 기념비는 비문을 박경수가, 글씨를 김기승이, 조각설계는 김주현이 각각 맡았다.
서울지구 병사구 사령부 터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곳에는 6.25전쟁 당시 징병업무를 담당한 서울지구 병사구 사령부가 있었다. 정부수립 후 병역법이 공포되면서 병력모집은 지원병제에서 징병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징병업무 수행을 위해 각 지구별로 병사구사령부를 설치했지만, 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당장 징병제를 실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50년 3월 해체되었다. 전쟁 발발 후 정부는 병력 보충이 시급해지자 가두모집, 강제징집 등을 시행했다. 서울수복 무렵인 9월 26일 서울지구 병사구 사령부가 재설치 되어 현역 징병 및 제2국민병 소집 업무 등을 담당했다. 그런데 전황이 악화되면서 부산으로 이동했다가 1951년 3월 15일 서울로 복귀했다. 전쟁 이전 병무행정의 공백과 약화된 국방력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기위해 2021년 6월 18일 이곳을 현충시설로 지정하고 안내판을 세웠다.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페이지 이동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