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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삼진 독립의거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28일 고현시장에서 변상태·권영조·권영대·변상섭·변상헌 등의 사전 준비로 400여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으며, 이어서 4월 3일 변상태·권태용·권영대의 주도로 진전·진북·진동면의 3개면이 연합하여 5천여명이 대규모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다. 이 시위로 고앙주(高昻柱, 미상~1919), 김수동(金守東, 1877~1919), 김영환(金永煥, 미상~1919), 김호현(金浩鉉, 1893~1919), 변갑섭(卞甲燮, 미상~1919), 변상복(卞相福, 미상~1919), 이기봉(李基鳳, 미상~1919), 홍두익(洪斗益, 미상~1919) 등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22명이 부상당했으며, 구수서(具守書, 1894~1948), 권영대(權寧大, 1885~1946), 권오규(權五奎, 1895~1961), 권태용(權泰容, 1885~1939), 김규현(金奎鉉, 1903~1933), 김영종(金永鍾, 1890~1950), 백승인(白承仁, 1899~1970), 변상섭(卞相攝, 1891~1950), 변상술(卞相述, 1898~1946), 변상태(卞相泰, 1889~1963), 변상헌(卞相憲, 1897~1965), 변우범(卞又範, 1898~1974), 변종열(卞鍾悅, 1896~1974), 서정규(徐正奎, 1889~1949), 이교영(李敎瑛, 1878~1950) 등이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마산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85년 이 비를 세웠다.
삼일독립운동 유공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울산광역시 울주군
관할지청 : 울산보훈지청
시설내용 :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4월 2일 언양 장날 이무종·강경찬(姜康贊)·이규인(李圭寅)·이성영·최해선·이규장·이규천·최해규(崔海圭)·황선훈 등의 사전 준비로 1천여명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본군 수비병이 발포하여 1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김길천, 손입분, 김종환, 정달조 등이 부상을 입었다. 이 시위에서 강문필(姜文必, 1872~1953), 김경수(金卿洙, 1892~1968), 김운봉(金雲峰, 1893~1950), 김정훈, 김종백, 서석용, 손수복(孫秀福, 1877~1961), 윤봉수(尹鳳水, 1889~1971), 정대원, 정용덕 등이 피체되어 90도의 태형을 받고, 강기형(姜祺馨, 1876~1940), 강재주, 김락수(金洛綬, 1880~1919), 김원용, 김정원(金正元, 1880~1961), 김한준(金漢俊, 1884~1956), 박채우, 서태식(徐泰植, 1889~1973), 신동목(辛東睦), 이규경(李圭庚), 이규인(李圭寅, 1890~1927), 이무종(李武鐘, 1893~1956), 이민영, 이성영(李成榮, 1879~1940), 최윤봉(崔允奉, 1898~1934), 최한홍(崔翰鴻, 1898~1949), 최해선(崔海璇), 허황(許황, 1874~미상) 등이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그 가운데 김락수는 옥중 순국하였다. 3·1독립운동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2001년 12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삼일사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울산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울산보훈지청
시설내용 : 삼일사는 병영에서 일어났던 1919년 독립만세 시위운동에서 순국한 독립투사와 이 운동에 동참하였다가 돌아가신 기미계원들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기미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지방에도 파급되어 울산의 병영에서도 서울에 유학하고 있던 한명조, 이영호로부터 이를 전해 듣자 때를 놓치지 않고 청년회 간부였던 양석룡, 이현우, 이문조, 박영하, 김장수, 이종근 등은 거사를 위한 모의를 거듭한 끝에 4월 5일과 6일의 양일에 걸쳐 성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자 일신학교 학생과 성내의 온 주민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이때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수비대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엄준, 문성초, 주사문, 김응룡의 네 사람이 순사하고 송근찬, 김규식, 김두갑 등 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고 천추의 한을 품은 채 해산하고 말았다. 실형을 받았던 동지들이 형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들은 기미계를 만들어 순국한 동지의 외로운 넋을 달래기 위해 매년 4월 6일에 비밀리에 빠짐없이 제사를 받들어 오다가 1955년 영모각을 개수하여 3·1사를 세우고 이들을 안치하는 한편 3·1사 봉제회를 만들어 길이 그들의 뜻을 받들어 오고 있다.
삼일 충혼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울산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울산보훈지청
시설내용 : 삼일충혼비는 1967년 4월 5일 울산 병영3·1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순국하였거나 형을 받았던 애국지사(순국 4분, 징역 17분, 태형 5분)를 추모하기 위하여 울산 중구 서동 193(삼일사당내)에 건립한 것이다. 병영만세운동에 참가한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병영삼일사봉제회는 매년 4월 6일 삼일사에서 봉제를 개최하고 병영초등학교 및 병영사거리 일원에서 기념식 및 재현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병영에서는 4월 4일 오전 9시경, 문성초(1887~1919) 등 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병영국민학교에 모여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인근의 서리·동리·남외리·산전리 등을 행진하며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행사로 해산하였다. 4월 5일 오후 3시경, 주동인물들이 다시 병영국민학교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일제의 경찰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군중이 1천여 명에 이르자 일본관헌은 울산으로부터 13명의 군경을 증원받아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결국 이문조 등 9명이 일본 군경에 의해 체포되자 군중들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에 투석하였다. 이에 일본 군경은 시위군중에게 무차별 사격을 감행해 선두에 있던 엄준, 문성초, 주사문(1886~1919), 김응룡 열사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삼란 권공영두 기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합천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기적비는 1971년 3월 1일 합천군 대병면 성리 860번지에 위치한 선생의 묘소 옆에 대병 3·1독립운동을 주도한 권영두 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권영두 선생(1874~1961)은 1919년 3월 20일 대병면 창리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권중박·정시권·유인수 등과 밀의한 끝에, 3월 20일의 창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한편 인근 부락에도 이 계획을 알렸다. 3월 20일 오후 1시, 그는 장터에 모인 4천 명의 군중에게 독립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준 뒤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 시위군중은 장터를 돌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창리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드디어 정문을 박차고 소내로 돌진하였다. 그러자 수십 명의 일본군이 도착하여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면서 시위군중을 검거하기 시작하게 되자 그도 이때 체포되었다. 이해 10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삼충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5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삼충단비는 을사조약 때 자결 순국한 조병세, 민영환, 최익현 세 충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조병세는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1889년 우의정을 거쳐 1893년 좌의정이 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관제가 개혁되자 사직하고 가평에 은거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경하여 을사 5적신의 처형을 왕에게 간청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이루지 못하였다. 심상훈·민영환 등과 함께 여러 날 궁궐에 머물며 을사조약의 무효를 상소하다, 왜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해산되었다. 그러자 각국 공사 및 동포에게 보내는 글과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민영환은 약관의 나이로 도승지·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한성우윤 등을 지냈다. 조선 최초의 신식해군인 해방영을 설치하였고 1886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러시아와 밀약을 추진하였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형조판서, 한성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병세와 함께, 백관을 인솔하여 대궐에 나아가 이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짐을 보고 집에 돌아가 자결하였다. 최익현은 김기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월권행위를 비판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반대하여 도끼를 메고 광화문에 나아가 올린 개항오불가의 상소를 올린 뒤부터는 개항 반대와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했고, 을사 보호 조약 이후로는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계기로 그는 공개적으로 의병을 모집하였다. 임병찬, 임락 등과 함께 전라북도 정읍 에서 거병하였으나, 곧 관군에게 패하여 체포되었고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유배 당일, 대마도주의 일본식 단발 요구에 대한 항의의 단식을 시작하였으나, 대마도주의 사과 및 왕명으로 단식을 중단을 하였다. 하지만, 단식의 후유증으로 3개월 뒤의 발병으로 75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삼척지역 경찰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기간 중 조국과 삼척지역의 수호를 위해 하장면 용연리 전투, 가곡면 풍곡리, 오저리 전투, 근덕면 궁촌리 전투, 원덕읍 호산리, 이천리 전투, 미로면 내미리 전투, 노곡면 중마읍리 전투, 정라동 정상리 전투 등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13명의 삼척경찰서 소속 순직경찰관들의 조국수호의지를 후세에 널리 전하고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자 1992년 6월 6일 강원 삼척시 근덕면 근덕면 궁촌리 1023-29에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전적비가 위치한 궁촌리는 삼척지역 전적지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삼양지지 및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49년
주제 : 기타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할지청 :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
시설내용 : 제주4.3사건 당시 공비와 교전 중 순직한 경찰에 대한 애도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합천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날 장터에서 정연태·정현아·이기복 등의 사전 준비로 300여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으며, 이어서 3월 23일 다시 삼가장터에서 백산·상백·삼가·가회·대병·용주·대양면 등에서 모인 13, 000여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하며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 관공서에 몰려가자 일제군경이 무차별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났다. 이 시위로 공재규(孔在奎, 1848~1919), 권영규(權永圭, 1865~1919), 김기범(金箕範, 1862~1919), 박선칠(朴仙七, 1876~1919), 윤성현(尹聖鉉, 1902~1919), 이상현(李相賢, 1886~1919) 등이 23일 시위 현장에서 순국하고, 공민호(孔敏鎬, 1880~1948), 오영근(吳永根, 1889~1951), 윤규현(尹圭鉉, 18947~1965), 이계엽(李啓燁, 1887~1947), 정각규(鄭恪圭, 1889~1965), 정방직(鄭邦直, 1891~1961), 진택현(陳宅賢, 1881~1951), 최용락(崔龍洛, 1895~1967) 등이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합천 삼가장터3·1만세운동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2006년 5월 20일 이 탑을 세웠다.
삼요정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883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라북도 임실(任實)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인이다.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전해받은 독립선언서를 운암면(雲岩面) 일대에 게시하였다. 그는 이날 정오경, 운암면 지천리(芝川里)에 있는 천도교 교구실에서 천도교 전도사인 한준석(韓俊錫)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여매를 전해받았다. 이에 그는 이날 독립선언서를 운암면내의 입석리(立石里)·선거리(仙居里)·학산리(鶴山里) 일대에 게시함으로써,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을 이 지역 주민들에게 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3월 12일의 임실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의 정신적 배경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곧 체포되어, 이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삼요정은 김영원이 올바른 민족정신을 배양하고 후학양성에 매진하고자 1883년 임실군 운암면에 건립하였으며, 이후 민족교육의 출발점이자, 1904년 전주에 창동학교, 1906년 임실 청웅에 삼화학교의 건립으로 이어지는 근대식 개화교육의 선봉이 되었다. 국가보훈부에서는 2003년 12월 8일 삼요정을 현충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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