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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애국지사 광산김공제중 독립운동 공훈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3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전라남도 담양군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김제중(金濟中, 1893~1950)은 1919년 3·1독립운동 때에 선무대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1920년 김성현(金聖炫)·문동길(文東吉) 등과 함께 신덕채(申德采)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조달의 밀지를 받아 같은 해 4월부터 6월 사이에 담양·곡성 지역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다. 1921년 밀고로 일경에 체포되어 같은 해 11월 1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광산김씨 문정공파 종중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서 1991년 2월 7일 이 비를 세웠다.
애국지사 송계명 선생 구국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54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남도 고흥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송계명은 전남 고흥군 동강면 윤리 축내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08년 전남 보성에서 담산 안규홍·김성택·의제 송기휴와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보성의 파청전투와 동복의 운월치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1909년 8월 16일 일본군에 피체되어 잔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동강 주재소 안에서 북향사배하고 스스로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계명선생구국기념비는 애국지사 송계명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자라나는 후세에 전승하기 위해 1995년에 건립되었다.
애국지사 서암 조선생 창의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0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조계승은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 장날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함안 장날의 만세 운동은 조한휘, 한종순, 이찬영, 조병흠, 박건영, 강기수, 한관렬 등이 계획하고 대산면의 한문 교사 안지호와 연락하여 3월 19일 함안 장날에 거사를 도모하기로 하였다. 이때 조계승도 이 계획에 적극 찬성하고 3월 19일 봉성동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오후 2시,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마산 경찰서장 북촌과 현지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자 이에 격노한 시위 군중은 주재소를 습격하여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시위 군중은 폐쇄한 군청 문을 부수고 들어가 청사 안으로 들어가 군수 민인호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다. 오후 5시, 시위대는 마산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 포병대대와 대치하다 그들의 무자비한 탄압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는 이때 체포되어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애국동지 위령단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지곡면 출신 경감 이용구 경감 등 46인의 군경과 반공투사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대한청년단 지곡면 단원과 지역유지들의 찬조로 1951년 5월 1일 경남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 산64-1에 애국동지 위령단을 건립하였다.
애국지사 간취 김희봉 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4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창녕군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희봉은 경남 창녕 사람으로 유학자이다. 3·1운동 때 경상도 유림들로부터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받아 내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1919년 3월 18일(음력)경 일본 헌병에 발각되면서, 그는 고암면 원촌 출신의 유학자인 조긍섭과 함께 대구 헌병사령부에 연행 구금되어 고초를 겪었다. 장서사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그는 3·1운동 1주기를 즈음하여 거족적인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고, 1920년 2월 창녕 장날에 「통곡아팔역 동포 오주열강」이란 선언문을 작성, 낭독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다시 고초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현호 박석홍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91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박석홍은 비안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여 학문을 통달하고 1914년 19세의 몸으로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고 김약수와 중국 운남군관학교를 찾아 가다가 일본경찰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만주에서 동지를 규합하더니 1920년 북만주 조선인청년총동맹을 조직하는 한편 잡지 『농군』 『혈청단』등을 발간하여 청년동지의 무장봉기를 제창하였고 김좌진이 이끄는 신민부의 기관지 『신민보』에서도 구국의 필봉을 들었다. 그 후 이백파와 고려혁명군을 재조직하고 다시 단두단을 조직하여 서울에 있는 일본인 집안 살해 계획을 세운 뒤 1928년 소련영토인 연해주일대에서 망명동지를 구합하다가 청진 함흥동 감옥에서 4년의 옥고를 겪었다. 그로부터 국내동지들과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8.15해방 이튿날 의성경찰서에서 석방되기까지 20여회의 검거 투옥을 당한 애국지사이다.
애국지사 조재만선생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조재만은 삼창리 현고마을에서 태어나 백학학원과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고보에 진학한 뒤 친일교장 배척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제적됐다. 그는 1926년 9월 대구에서 이육사, 이정기, 장진홍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를 만들고 휘문고 출신들과 함께 6.10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같은 해 12월 중국으로 망명한 조재만은 중국에서 전개되던 독립운동 상황을 인식하고 한국인 군관학교 설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다시 국내에 잠입, 1927년 10월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2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고향에 돌아와서 청년들을 상대로 계몽운동과 항일의식 고취에 힘써 후학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정신적 지주가 됐다.
애국지사 초산 성만영 독립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5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합천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성만영은 경남 합천 사람이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자 합천군 초계면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이원화·전하선·김덕명 등과 함께 3월 21일 초계리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기로 하였다. 3월 21일 장날을 기하여 장터에 모인 4천여 명의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여 시위를 주도하고 초계우편소와 주재소를 습격하여 투석과 곤봉으로 기물을 파괴하고 일경 2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 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의 무력탄압에 시위가 중단되고 동료들과 함께 그도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8월 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월성 박공임갑 기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2년
주제 : 3·1운동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박임갑은 경남 양산 출신이다.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동래군 동래읍 장날을 기하여 엄진영,고영건,김귀룡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 같은 학교 학생 수백 명과 장터에 모인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같은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박봉필선생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8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예천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박봉필은 1908년 3월 29일 경북 예천군 용문면 덕신리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일가가 모두 만주로 이주하였는데 북경소재 중국의숙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전수하고 1934년 7월 항일결사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39년 중경으로 가서 1940년 6월 광복군 편성의 병력충원을 위해 활동하였다. 1941년 9월 일본군 점령지역인 봉천으로 잠입하여 간도성과 길림성 등지에서 독립군 병력증강을 위하여 지하에서 활약을 하던 중 일경에 피체 되었다. 일 년여의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재만 항일결사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되어 신경(장춘)고등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에 1945년 8월 13일 패망을 앞둔 일본 관동군 헌병대가 장춘교외로 연행하여 불법적인 총살형을 감행하여 순국하니 향년38세이다. 1977년에 정부에서는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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